공부만이 답이다 -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책을 볼 시간
행정고시 합격 후 10년 만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서기관이 되자마자 공무원을 그만 둔 30대 젊은이가 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2024년 12월 26일 출간. 저자 노한동)를 읽었습니다.
이 책 속에 우리나라의 출판 문화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눈 뜰 때부터 잠자기 직전까지 휴대폰에 빠져 사느라 책을 이전보다 확연히 덜 읽는 저에게 정문일침을 주는 것 같아 크게 공감했습니다.
1. 한국의 책 수출 실태
전 세계에 우리 책을 소개하고 판권을 수출하는 회사의 대표를 만났습니다. 나는 대표에게 한류가 저토록 난리인데 우리 책만은 해외에서 잘 안 팔리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가져다 팔 것이 많이 없습니다. 다들 자기가 쓰고 싶은 것만 씁니다."
대표는 해외, 특히 영미권 시장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책을 한국 출판시장에서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출판사와 작가 모두 해외의 독자가 어떤 책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없이 자신들이 내고 싶은 책만 내고 있으면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로 수출 전략의 부재를 가린다는 뜻이었습니다.
김윤지의 '한류외전'에서는 지금의 한류가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라고 평가합니다. 한류의 성공에는 정부의 지원정책,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적 변화, 소수 기업가의 탁월한 능력, 한국 대중 문화시장의 역동성, 세계적인 IT 인프라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한류의 성공이 설계되지 않았다는 말은 여러 요소가 우연히 결합하였다는 의미이지, 업계 스스로 해외 진출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중음악계는 디지털 전환으로 국내에서의 음반 수익이 줄어들자 해외시장 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으로 아시아에 진출했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미국 시장을 끊임없이 두드렸습니다. 계속된 노력은 유튜브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 팬덤 문화의 확산 등과 맞물리며 K팝은 마침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대표의 답변은 타당했습니다. 우리나라 출판 업계가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판매하는 마지막까지 해외 독자를 타깃으로 치밀한 노력을 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요?
2. 우리나라의 독서 실태
사실 출판업계는 수출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수시장에서 책의 수요가 빠르개 붕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43%입니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는다는 의미입니다. 10년 전인 2013년 성인 연간 독서율 72.2%에서 거의 반토막이 난 수준입니다.
성인 독서량과 도서 구입량은 더욱 처참합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2013년 10.2권에서 2023년 3.9권으로 줄어 들었고, 성인의 연간 도서 구입량은 2017년 4.8권에서 2023년 2.3권으로 절반 아래로 감소하였습니다.
외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독서율만 유독 급전직하하고 있습니다. 미국 성인의 독서율은 2014년 76%, 2021년 75%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일본도 2015년 49%, 2023년 47%로 거의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덜 보고, 그에 따라 출판 사업체의 매출이 줄어들며, 책이 나와도 팔리지 않으니 신간의 발행부수는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보통 책의 위기를 말할 때, 그 핵심적인 원인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의 측면에서 찾기 쉽습니다. 다양한 매체의 등장,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한 문해력 저하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단에 의하면, 책의 위기는 '독서'의 위기로 귀결됩니다.
수출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출판사와 작가들이 해외 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좀처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내수시장에서도 이들이 독자들이 원하고 관심있는 책을 제때에 충분히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서의 장애요인을 묻는 질문에 성인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4.4%)를 가장 많이 선택했습니다.
'책 이외 매체를 이용해서'(23.4%)는 근소한 차이로 그 다음을 차지했습니다. 어쨌던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책이 다른 매체보다 더 관심있고 흥미로운 내용을 다룬다면 언제든 독서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외에 '다른 여가활동을 해서'(8.9%), '재미가 없어서'(7.0%), 필요성이 없어서(4.0%)도 있었습니다.
3. 결
0.72명이라는 출생률이 우리 사회의물리적 소멸을 나타내는 지표라면, 독서율 43%는 우리 국민들의 정신과 문화의 소멸을 경고하는 숫자입니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히 독서의 문제가 아닙니다. 독자가 일고 싶은 책, 동시대를 담아내는 양서를 내지 못하는 출판산업 전체의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책의 종말이라는 비문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쾌거였습니다. 그로 인해 독서 열풍은 서점가를 강타했고 그녀의 책은 한 달 이상 베스트셀러를 독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열풍은 단 한 명의 작가에 의존해 독서 열기가 이어지는 우리 출판시장의 허약함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지금처럼 사재기 방지 등을 위한 정부의 출판유통통신망 참여를 둘러싸고 출판업계와 정부가 소모적인 싸움이 계속 이어간다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출판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로 언제나 유튜브 등으로 휴대폰에 코를 박고 책을 읽는 시간을 전혀 내지 못한다면 성장과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