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직에 있을 때만이 아니라 은퇴 후에도 글쓰기를 가르치고 글쓰기 관련 책을 여러 권 발간한 이오덕 선생님의 '무엇을 어떻게 쓸까"입니다.
1. 살아있는 글쓰기
살아있는 말은 방안에 앉아서 생각만 해서는 나올 수 없고, 책을 읽어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책만 읽고 몸으로 겪은 일이 없으면 도리어 죽은 말(책으로 읽힌 글말)만 늘어놓게 된다. 살아있는 말은 다만 현실 속에서 나날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절실한 삶을 본 대로 들은 대로 생각한 대로 말한 대로 행한 대로 자세하게 붙잡아 썼기에 자기자신의 말이 되어 글로 나타난 것이다.
글은 자기가 겪은 일을 쓰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또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글을 쓸 때는 어떤 이야기를 써더라도 느낌이나 생각을 쓰는 데에 더 무게를 두어 감상문으로 하든지, 느낌이나 생각이 얼마쯤 들어가더라도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있는 서사문으로 쓰든지 해서, 처음부터 어떤 형태의 글을 쓴다는 마음가짐이 있는 편이 좋겠다.
2. 무엇을 어떻게 쓸까
시인들의 시,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시인들의 시에서 내가 언제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왜 시인들이 일하는 삶을 시로 쓰지 못하는가, 왜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그 땀 냄새를, 무거운 짐에 짓눌려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시로 쓰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하는 삶이 가장 높고 귀한 가치가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밀레가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듯이, 시도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새로운 시를 쓰게 되었다는 지난 100년 가까운 역사에서 일하는 삶을 그린 시가 보이지 지 않는다. 단 한편도 !
내가 시인들의 시를 알뜰히 살펴보지 않아서 놓쳤는지 모르지만 아직 그런 시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는 시, 슬퍼하고 원통해하는 시, 무엇을 외치는 시는 많다. 무엇을 그리워하거나 꿈을 꾸는 시, 저 혼자 무엇에 취해서 수다를 늘어놓는 시도 많다.
무엇을 썼는지도 알 수 없는 시는 더욱 많고, 세상을 관광거리로 삼고 있는 듯한 시는 더더욱 흔해 빠졌다. 그런데 일하는 삶을 보여주는 시는 없다. 시가 왜 이런 꼴이 되었는가? 그 까닭은 뻔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한 것처럼 쓰자니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일을 모르고(내가 알고 믿기로는 아무리 놀랍고 뛰어난 상상을 하는 재주꾼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몸으로 해보지 않은 일과 그런 일에서 우러난 정서를 제대로 올바르게 상상해 낼 수는 절대로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쓰지 못한다.
오늘날 아주 어려서부터 삶이 없이 자라난 숱한 시인들이 써 놓은 시가 어떤 꼴로 되어 있겠는가 미루어 짐작할 것이다. 일하는 삶의 바탕이 없이 제 멋대로 꾸며놓은 지식인의 정서로 되어있다는 사실은 시에 씌여진 말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글을 머리로 만들지 말고
글은 몸으로 부딪친 일을 쓰고 가슴에 울려온 느낌과 생각을 쓰는 것이지, 머리로 써서는 안된다. 머리로 글을 만드니까 말을 부질없이 꾸미게 되고, 사실과는 다른 것을 쓰고, 유식한 말을 흉내 낸다. 알맹이는 없이 말만 요란한 글, 남을 속이는 거짓스런 글은 이렇게 해서 쓰게 된다. 거짓 글까지는 안 된다고 하더라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글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을 논리로 써서는 안 되는 까닭이 이러하다. 논리로 쓰는 것이 머리로 쓰는 것이다.
3. 결
이오덕 선생님이 추천한 여고생의 글 하나를 소개한다.
친구를 찾아서
친구가 취업을 나갔다. 안성휴게소 판매직으로. 갈 때는 물론 기대감으로 잔뜩 들뜬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일주일도 지나지난 지금, 자주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곤 한다. 힘들다는 거다. 사람들도 보고 싶고.
사실 이런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지만 겁이 난다. 난 과연 적응할 수 있을는지, 그리고 적응하는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자신이 없어진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보다 잘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까지 있었는데.
오늘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오려고 찾아갔다.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이 더 반가운 거라 하길래 연락하지 않고. 일요일이라서 휴게소 안은 몹시 붐볐다. 국수나 커피를 사 가지고 가다가 부딪혀 다 쏟게 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나도 그 사람들 사이로 헤집고 들어가 국수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그 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글쎄, 너무 바빠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땀까지 흘려가며 국수에 국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부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냔 길게 늘어선 줄 뒤로 가서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줄더니 이제는 내 차례다. 친구는 받은 돈을 정리하느라 머리를 숙인채 '무얼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능청스레 '여기 국수 맜있어요?'라고 되묻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목소리를 알아듣고 쳐다 볼까봐서.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를 듣더니 '성실아'하고 부르는거다. 옆 모습이라 알아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내 얼굴엔 도장이 찍혀 있단다. 주근께 말이다.
역시 펄쩍 펄쩍 뛰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자꾼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몇 마디 밖에 나눌 수가 없었다. 더 기다려도 시간이 날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간다고 말하고는 뒤돌아서는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잘 적응이 되어 가고 있는데, 괜시리 마음만 흩으려 놓은 것 같아서. 걱정도 되고. 그러난 이젠 믿기로 했다. 잘 이겨 나갈 거라고.
(안성여고 생활글짓기반 우리끼리 애긴데요 제 3집)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