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묵묵부답 - 이영신 시
별 불만 없이 잘 살고 있는 죽청리 흰 염소에게
어느날 갑자기 하느님이 다가가 등을 툭툭 치시더니
시한부 삼개월 삶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 날 부터 흰 염소는
집 앞에 면회사절이라 써 붙이고
왜 하필 저입니까.
가슴 쥐어뜯으며 대들다 딩굴다 발길질까지 했지만
그분은 그냥 바라보기만 하셨습니다
그렇게 열흘은 분노로
또 열흘은 눈물로 나날을 떠밀어 보내던
죽청리 흰 염소.
하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도 쓸고
널브러진 술병도 다 치우고
깨끗이 옷매무새 다듬고 귀내까지 걸어가
둑에 앉아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다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풀을 한가롭게 뜯었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2. 소감
시인은 자신이 호흡을 가다듬을 곳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위 시는 네 곳에 있습니다. 마침표를 생각하면서 시를 읽으면 시인이 생각한 세계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일찍 일어나기도 하고 늦게 일어나기도 하는 일. 그렇지만 내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죽청리 흰 염소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한가로이 풀을 뜯을 수 있을까요. 가슴 쥐어뜯으며 대들다 딩굴다 발길질까지 하다가 남은 삼개월도 허무하게 보내 버리지 말지나 않을까요.
트리나 플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줄무늬 애벌레처럼 남들이 올라간다고 가까운 애벌레 동료들의 머리를 밟아가며 무작정 올라간 높은 기둥 위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아무 것도 없는, 단지 허공 밖에 없어서 다시 추락할 일만 남은 그 높은 꼭대기를 향해 오늘도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나의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나의 선택권을 내 줄 수는 없습니다. It's up to you.
꽃들은 당신이 나비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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