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아파트 평수 차이, 다문화, 20대의 남녀 갈등, 인서울 대학과 지방 대학 등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김지혜 교수가 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은 일상 속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일상속의 차별이라는 요소를 과감히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는 내가 서울에서 3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체험했지만 막연히 생각만 하고 왜 그런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대학 서열화'라는 문제를 김교수의 시각으로 정리해 보았다.
1. 대학의 서열화
우리나라에서 '대학 서열화'라는 말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학생들에게 보다 높은 목표을 강조하는 일부 입시 학원 강사들이나 고3 교사들을 제외하고는 꺼내어 말하기 힘든 일종의 금기어다. 아무리 조심해서 말해도 솔직히 말하는 순간 상처를 입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누구도 이 질서를 바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감수하려고 한다. 왜 일까?
2. 생각이 현실이 된다
소위 명문 대학이 인기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특정 대학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머릿속 그림, 즉 고정관념이다. 사람들은 이미지만 가지고 그 대학을 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시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대학이 취업, 결혼 등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높은 서열의 대학에 가는 것이 유리하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대학 '간판'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사실은 그 간판이 실제로 개인의 능력을 만들고 가치를 만든다.
고정관념은 부정적인 영향도 미치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소위 명문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은 단지 그 대학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고정관념을 얻는다. 일종의 유리한 편견인데, 이것이 실제로 현실을 만든다.
일상적인 만남이나 각종 사회활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가고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명문 대학의 학생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성장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순환고리 속에서 편견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상대적으로 지방대생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얻는다. 유리한 편견이 이익이 되듯이 불리한 편견은 불이익을 초래한다. 소위 명문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덜 우수하고 덜 성실하고 노력이 부족하여 일을 잘 못할 것 같다는 기대를 받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기대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사회가 이런 편견을 바탕으로 어떤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활동의 기회를 덜 부여하고 같은 성과에 대해 저평가하면서 개인이 성장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3. 결 : 새는 새장을 보지 못한다
교육이란 본래 모든 사람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이어야하는데, 그 본질적인 기능이 왜곡되어 누군가에는 우월감을, 누군가에게는 열등감을 심어주는 체제가 되었다.
메리린 프라이는 억압의 상태를 새장에 비유한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새장도 뒤로 물러나야 볼 수 있다. 구조적으로 연결된 강압과 장벽의 네트워크가 우리의 날개짓을 방해하고 있음을 말이다.
우리의 생각은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저 제한된다. 그들은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상대에게 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이 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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