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에 대해 궁금하던 차에 제주의 소리에 중국 경제 전문가인 삼화회계법인 중국지사 고현승 대표가 기고한 글을 읽고 쉽게 시장 전체를 파악할 수 있고 크게 공감하는 바가 많아 나눕니다.
1. 왜 스테이블 코인인가
플랫랜드(다차원 세계의 이야기)의 주인공 A인 스퀘어씨는 평면 2차원에 사는 사각형이다. 소설은 그가 우연히 3차원 구를 접하게 되며 겪게 되는 기괴한 경험을 풀어간다. 저차원 세계가 고차원 세계를 만나면 기존의 이론이나 견식으로는 해석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애드윈 애벗이 플랫랜드를 발표한 19세기 말은 해가 지지 않는 빅토리안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뉴턴의 전통역학에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 도약하기 위한 이론기초인 전자기파의 존재가 증명되던 Non-stable한 시대였다.
지니어스법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두고 있다. 이는 이름 그대로 천재를 육성하는 법안이 아니다. 그 동안 회색지대에 있던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권 금융으로 끌어올리는 법안이다.
주요 내용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매월 발행준비금을 공개하고 1코인 가치를 1달러로 유지해야 한다. 담보자산으로 달러와 잔존기간 93일 이하의 미국채만 인정했다. 코인발행도 아무나 할 수 없고 연방정부로부터 발행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 외 투명성 감독, 자금세탁법, 테러자금조달방지 등도 덧붙였다. 시가총액 100억달러 이상의 발행사는 Fed의 감독을 받는다.
외국 발행사에게는 진입장벽을 만들었다. 최소 자본기준도 마련하도록 하여 안전성을 높였다. 스테이블 코인이 명실공히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유통/지급수단이 될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은 암호화폐를 달러패권의 위협으로 인식했었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가 스테이블 코인을 인정하며 단번에 뒤집었다. 주요 이유는 미국채 수요가 줄어들고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린 달러가 달러패권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트럼프 정부가 글로벌 무역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재정건전성을 밀어붙이고 있다. 자유무역질서가 흔들려 주요 수출국들의 대미흑자가 줄고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채를 이전처럼 사지 않고 더 안전한 자산으로 발길을 옮길 것이다. 미국채 금리는 올라가고 달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이 불안정해진다. 관세부과, 이스라엘-이란전쟁, 법인세감면 등 트럼프정부의 혼란스런 행보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에 대한 의심을 계속 키우고 있다.
중국이 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기축통화국 지위에 도전하고 있다. 사우디와 석유결제를 인민폐로 하는 협정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인민폐가 국제통화가 되려면, 미국처럼 적자를 통해서 인민폐를 해외로 뿜어대고 금융시장 개방으로 다시 빨아들여야 하는데 단기간내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인민폐는 글로벌무역 결제를 위한 지불화폐로는 기능이 확대될 것이나 투자화폐(가치척도), 가치저장 화폐로는 아직 난망하다.
미국은 왜 스테이블코인을 받아들였을까? 무엇보다도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와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기술로 위조가 불가하고 탈 중앙화로 송금과 사용이 자유롭다. 하지만 담보자산이 없어 변동성이 크다. 안정적인 통화로서 기능이 취약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에 기축통화인 달러를 고정시켜 안정성을 보완했다.
개인은 1달러를 주고 1코인을 살 수 있다. 발행사는 1달러를 받아 이자수익이 있는 미국채를 산다. 개인은 1코인으로 1달러어치의 물건을 사거나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럼 시장에 2달러가 생긴 것과 같다. 발행사가 1달러, 개인이 1달러어치의 코인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장에는 달러량이 증가한다.
발행사는 코인을 많이 발행하는 것이 이익이니 미국 재무부가 찍어내는 국채를 계속 살 것이다. 사실상 민간의 Fed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스테이블 코인은 결제의 편리성으로 더욱 빨리 시장에 퍼질 것이다. 다만, 중앙은행의 발권력과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2. 코인결제 시대의 도래 가능성
지니어스법안이 통과되면 코인결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2019년 세계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이 24억달러에 그쳤던 것이 2025년 5월 말 현재 2,308억달러까지 늘었다. 1코인이 1달러이니 최소 2308억 달러가 코인의 모습으로 글로벌 시장에 공급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주수익원이 준비금으로 투자한 국채이자 수익인 만큼 발행사들은 미국채를 사모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대신하여 미국채의 새로운 수요처가 될 것이다. 달러가치는 안정되고 기축통화 지위는 계속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패권의 히든카드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대선후보 토론에서 모 후보가 상대 후보에게 USDT, USDC의 차이를 아느냐 고 질문했다. USDT, USDC는 스테이블 코인명이다. USDT(테더)는 현재 가장 많이 보급된 스테이블코인으로 유럽을 기반으로 한다. 최근 중국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심과 회계장부 불투명성 등 신뢰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2025년 1/4분기말 현재 1200억달러의 미국채를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보유한 미국채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USDC(써클)는 미국을 기반으로 2025년 6월 5일 뉴욕거래소에 상장했다. 지니어스법안이 미상원을 통과하자 주가가 34% 급등하기도 했다. 지니어스법안의 최대 수혜기업이자 주목받는 코인이다.
도이치뱅크에 의하면 2025년 현재 달러와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이 전체 스테이블 코인 중 83%를 점유하고, 유로 8%, 기타 9%이다. 지니어스법안은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유지를 위해 달러와 국채를 매입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스테이블 코인은 또 다른 달러이다.
기축통화는 가치안정성, 보급성, 사용편리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금본위제 시절 달러와 금은 직접 교환이 가능했다. 페트로달러 시절에는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가 필요했다. 이제 코인의 편리성과 달러의 안정성이 결합한 새로운 글로벌 통화가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스테이블 코인이 국경을 허문다는 데 있다. 화폐의 국경은 각국 금융당국의 관리감독권이 미치는 범위이다. 화폐의 가격은 환율이다. 거래비용은 송금수수료이다. 그런데 코인은 발행사가 은행처럼 직접 개인에게 발행하기에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어렵다.
환율은 1:1로 달러에 고정되어 사실상 환차손익이 없다. 수수료는 스위프트협정과 은행도 통하지 않기에 사실상 무료이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선점을 하면 다른 국가의 통화주권이 무너질 수 있다. 일각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이다.
중국은 디지털화폐 선도국가이다. 알리페이, 위쳇페이 등 민간기업이 유통시키는 디지털통화가 이미 현금없는 사회를 실현했다. 개인이 1위안을 은행계좌에 예금하고 계좌를 지급플랫폼인 알리페이에 연동시키면 내 통장의 돈이 디지털머니로 거래된다. 1위안은 1위안일 뿐이다. 통화량 증가가 없다. 결제의 편리성으로 통화 유통속도가 빨라질 뿐이다.
알리페이 등 플랫폼회사는 고객지급준비금 100%를 인민은행에 예금해야 한다. 인민은행은 대차대조표에 비금융기관예금 항목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 외,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하는 CBDC가 있다. CBDC는 암호화폐의 위조방지 기능을 가미한 중앙은행이 발행관리하는 디지털화폐이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중 중국인민은행은 선수단과 기자단을 대상으로 CDBC를 보급해 시범 사용했다. 그런데 유독 암호화폐에는 잠잠하다. 중국에서 암호화폐 거래는 불법이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아직 입법사례가 없다. 중국은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대한 도전과 지하자금 유통, 특히 해외자금의 유출입에 대해 우려하는 것 같다.
중국도 미국의 지니어스법안과 써클 상장 등 스테이블코인 광풍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발권력과 인민폐 가치유지를 위해 섣불리 나서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 국제금융허브인 홍콩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조심스레 실험하고 있다.
홍콩은 5월 21일 스테이블 코인 관련 감독조례(초안)을 발표했고 8월 1일 시행했다. 홍콩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반드시 홍콩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자금세탁과 리스크관리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지하경제활성화와 비트코인 등 기타 불안정자산시장으로 대량의 화폐가 이동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민폐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이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불안정성과 감독비용의 증가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상용화된 알리페이 등 디지털화폐가 안정적이고 관리감독에 용이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아직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6월 25일 금융안정보고서를 내고 “금융안정과 경제전반에 잠재적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 코인 런(대량 인출), 금융사고, 자본유출, 통화정책 유효성 저하 등이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안정성의 부분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연동된 자산가치가 하루 3% 이상 벗어난 경우가 600회나 되었다고 한다. ‘과연 스테이블한가’라는 실존적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처럼 CBDC를 활성화하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만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화폐를 개인에게 보급하기에 시중은행의 기능이 축소되고 은행시스템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또한 큰 모험이다.
아직 스테이블 코인이 어떤 세상을 열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화폐이다. 모든 생산과 소비는 화폐로 소비되고 저장된다. 가장 많이 쓰이고 편한 통화가 교환과 저장의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대선공약으로 했다. 국회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한 상태이다. 디지털 화폐 시대에 통화주권은 소버린 AI와 같은 딜레마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더라도 더 안정적이고 환율변화도 없고 해외송금이 편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맞서 통화주권을 방어할 수 있을까? 한국처럼 소규모 개방경제체가 우리만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까? 만들 수는 있는 것일까? 오히려 글로벌 통화체제에서 고립되는 것은 아닐까? 헛힘 쓰지 말고 거인의 어깨에 앉아서 가는 것이 현명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통화주권을 포기할 수도 없다. 2차원 세계의 A. 스퀘어씨가 3차원 구를 만났을 때의 당혹감이 이해된다.
3. 결
네이버, 카카오 등 우리나라 기업들이 소버린 AI에 나서고 있는 것 처럼 원화 스테이블 코인도 미국의 스테이블 코인 발행과 맞물려 가능할 것인지 예의 주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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