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왜 EU와 NATO의 본부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지 알아 보았습니다.
1. EU의 탄생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은 유럽 국가들이 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된 가운데 미국과 소련 두 축의 냉전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에 새로운 정치, 경제적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아울러 국제정치와 세계경제에서 축소된 유럽의 역할, 미국의 지배적 경제력,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유럽 각국의 경제적 어려움은 각국의 협력체제 구축을 강요했습니다.
1947년 미국은 유럽의 경제자립을 위해 경제원조를 단행하였고 그 결과 17개국이 참여한 '유럽경제협력기구'가 수립되었습니다. 1952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등 6개국이 '유럽철강공동체'를 출범시켰고, 이들 6개국은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를 창설하는 로마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와 함께 '유럽원자력공동체' 창설 조약도 조인되었습니다.
1967년 이 세 공동체를 하나로 합친 유럽공동체(EC)가 출범하였습니다. 1973년부터 EC회원국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는데, 1973년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이, 1981년 그리스가, 1986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입하였습니다. 1987년 터키가 가입신청을 했고,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신청이 이어졌습니다.
1990년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통합을 공동체에서 연합 차원으로 확대하고 격상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유럽통합은 대세가 되었고 1993년 유럽연합(EU)이 출범했습니다. 1999년 EU 11개 회원국들은 단일화폐인 유로화를 도입하였습니다.
2. 왜 브뤼셀에 EU본부와 NATO본부가 있을까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로 인구는 119만명(2018년)입니다. 브뤼셀은 14세기부터 브라번트 공국의 주도였으나 17세기에는 스페인에 함락되어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830년 네덜란드로부터 벨기에가 독립되어 다시 벨기에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브뤼셀은 EU 집행부가 있는 수도이며 NATO 본부도 있습니다. 벨기에는 1990년말 강대국에 EU본부가 들어서면 안된다는 논리로 EU본부를 유치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로써 벨기에는 유럽에서 정치적 발언권이 높아지고 자본의 유입으로 경제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브뤼셀은 지리적으로 독일과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를 아우르는 서유럽 지역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를 적극 활용해 브뤼셀은 금융의 중심지,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 베네룩스 같은 국제기구와 다국적 기업의 본부가 자리잡은 '유럽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습니다.
국가 내부의 심각한 지역 갈등에도 불구하고 국제도시로 커나가는 브뤼셀은 어려웠던 도시의 역사에서 배운 교훈이 만들어낸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결
브뤼셀은 다른 국가의 수도에 비해 작은 규모로 런던이나 파리처럼 대도시는 아니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수많은 정책들이 이 도시에서 결정됩니다. 전체 도시민 중 20%가 외국인으로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특파원도 1000 여명이 넘어서 세계의 수조로 불리는 워싱턴보다 더 많은 숫자입니다.
브뤼셀은 유럽의 정치 1번지이며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몰려드는 국제화된 도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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