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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 그대로 쓴 일본의 번역어들 : 프리덤은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

by 선라이저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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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에는 자유, 개인, 근대, 미, 연애, 존재, 권리 등 근대에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말을 그대로 옮겨온 말 들이 많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번역가였던 야나부 아키라 교수의 ' 프리덤(freedom), 어떻게 자유(自由)로 번역되었는가'를 통해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조찬 모임에 발표하였던 내용과 질의응답을 통해 나온 추가된 내용들입니다.

 

1. 번역과 근대 지성의 문제 의식

 

  근대 동아시아는 단순히 서구 문물을 수입한 시기가 아니라, 서구 사상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고 해석한 시기였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틀이자 사유의 구조를 규정한다. 따라서 새로운 개념이 유입될 때 그것을 어떻게 번역하느냐는 단순한 번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적 사유의 가능성 자체를 열어가는 과정이었다.

 

  야나부 아키라 교수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러한 번역어들의 생성 과정이다. 그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단어들이 일본과 한국 지성사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본다. 특히 프리덤(freedom)을 자유(自由)로 번역한 것은 단어 하나를 넘어, 개인과 사회, 권리와 국가, 전통과 근대가 충돌하는 역사적 무대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는 자유라는 말이 결코 자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 자유 마음대로 함, 혹은 규범을 벗어남을 의미하며 부정적 색채를 띠었다. 반면 서구의 freedom은 개인의 권리 보장, 사회적 해방, 민주주의적 질서를 상징하는 긍정적 가치였다. 따라서 일본과 한국 지식인들이 서구 개념을 자유(自由)라는 한자어로 옮긴 것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기존 세계관과 충돌하며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혁명적 행위였다.

 

  야나부 아키라는 번역어의 논리, 번역이란 무엇인가, 번역의 사상등 일련의 저작을 통해 번역어의 역사와 그 사회적 시사점을 추적해온 학자다. 그는 언어가 단순히 사상 수용의 매개가 아니라, 사상을 변형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적극적 장치임을 강조했다. 이 책은 그가 평생 집요하게 추적한 문제의식의 집약판이다.

 

  따라서 '프리덤(freedom), 어떻게 자유(自由)로 번역되었는가'는 단순히 번역사를 다루는 저술이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의 정신사를 밝히는 작업이다. 자유라는 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지적 투쟁과 사회적 갈등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자유 개념의 뿌리를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2. 자유라는 번역어

 

 

  ‘自由는 본래 한자 문화권에서 존재했던 단어였으나, 주로 방종이나 마음대로 함의 부정적 뉘앙스를 지녔다. 일본 지식인들은 freedomliberty를 옮길 때 이 단어를 택했고, 이후 자유는 근대적 권리와 개인의 해방을 상징하는 말로 새롭게 정의되었다. 이 때의 자유는 기존 의미와 단절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새롭게 재구성한 결과였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 교수는 freedom은 인간이면 누리는 자유를 말하며 liberty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에서 상징되듯이 후손이 가지고 있는 상태, 즉 귀족이면 귀족이 가진 자유, 평민, 노예면 그들이 가진 자유를 말하며, 미국 시민이면 시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로서의 자유를 말한다고 보충했다. 

 

  일본의 만원권 지폐에 얼굴이 나오는 일본의 근대를 열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자유를 일본 근대화의 핵심 가치로 보았다. 그는 자유가 개인의 권리, 사회 발전, 국가 부강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그의 저술은 자유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전통적 질서에 도전하는 계몽의 언어를 제공했다. 자유는 근대 일본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모든 지식인이 자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는 자유 개념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서구식 자유가 지나친 개인주의를 불러일으켜 일본 고유의 공동체적 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가 공동체의 전통을 파괴하는 서구적 병리로 이해되기도 했다.


  이러한 반발은 자유 개념이 단순히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미 협상과 논쟁을 통해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자유는 결코 중립적 단어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의 장이었다.

 

  1870~1880년대 일본에서는 자유민권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요구하며 헌정 제도와 의회를 설립할 것을 주장했다. 자유민권운동은 자유 개념을 단순한 개인적 가치가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요구로 확장했다. 이는 자유가 일본 사회에서 제도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자유가 일본을 통해 수용되었지만, 의미는 달리 변용되었다. 개화기 지식인들에게 자유는 계몽과 근대화의 핵심 언어였고, 신문과 잡지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유가 곧 민족 해방을 뜻했다. “민족의 자유”, “나라의 자유라는 표현은 개인의 권리보다는 집단적 독립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의 헌법은 자유를 민주주의의 기초로 규정했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자유는 종종 제한되었고,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속에서 자유는 다시금 투쟁의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유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정치적 가치 중 하나다. 헌법 전문과 조항 곳곳에 자유가 등장하며, 정치 담론에서도 자유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경제적 자유가 핵심 주제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자유의 의미는 여전히 끊임없이 해석되고 논쟁된다. 이는 자유가 살아 있는 개념이자, 사회적 협상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자유라는 단어는 동아시아 지성사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탄생했음을 드러낸다. 자유는 방종에서 권리 보장으로, 개인의 해방에서 공동체적 책임으로, 그리고 민족의 독립에서 민주주의의 기초로 의미를 확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자유는 단순한 번역어가 아니라, 근대적 사유의 상징이자 실천의 언어가 되었다.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

 

3.  결

 

 

  ‘자유(自由)’는 단순히 영어 freedom의 대응어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 지식인들이 전통과 근대를 교섭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창출한 개념이며, 한국이 이를 수용·재해석하여 독립·민주·인권의 언어로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자유는 번역어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상이었다.

 

  자유는 일본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사회 개혁의 언어였고, 한국에서는 민족 해방과 민주화의 언어였다자유는 방종에서 권리 보장으로, 개인적 선택에서 공동체적 가치로, 정치적 이상에서 일상적 감정으로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이러한 다층성은 자유가 살아 있는 개념임을 증명한다.

 

  오늘날 한국 헌법은 자유를 민주주의의 기초로 명시하고 있다. 정치 담론에서도 자유는 핵심 가치로 다루어진다그러나 자유의 의미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경제적 자유, 표현의 자유, 공동체적 책무와의 관계 속에서 자유는 계속해서 재해석된다. 이는 자유가 여전히 사회적 협상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야나부 아키라의 연구는 번역이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수용과 변형, 문화적 교섭의 장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자유는 번역의 산물이자,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지성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관의 상징이었다.

 

  '프리덤(freedom), 어떻게 자유(自由)로 번역되었는가'는 번역어의 역사를 통해 동아시아 근대의 지적 투쟁을 보여준다.

자유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하지만, 사실 그것은 수많은 논쟁과 협상의 역사적 산물이다. 자유를 번역의 역사 속에서 성찰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 준다.

 

 1시간 발표에 이어 1시간 동안 자유롭게 질의 응답이 있었다. 나의 당초 예상과 달리 다들 관심이 많은 주제였다.

 

  특히 일본 근대를 연 후쿠자와 유기치가 '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를 주장하면서 조선이 일본에서 17만원의 차관을 받아간 김옥균(고종 앞에서 칼을 꺼내는 등으로 고종이 두려워해서 개혁이 실패) 등을 무지막지로 탄압하는 것을 보고 조선과 청은 일본의 나쁜 이웃 친구라서 버려야 한다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일본은 강대국이 되려면 먼저 유교의 봉건적 가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는 사회, 개인, 근대, 미, 연애, 존재, 자연, 그, 그녀 등의 우리 말과 같은 일본의 번역어도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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