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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개가 넘는 글을 8개월에 걸쳐 연이어 쓰고 나서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뭘 찾았다녔나 되돌아 봅니다. 인디언들도 힘껏 달리다가 중간에 잠시 서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1. 허상 - 문숙 시
까치 한 마리가 눈밭에서 눈을 쪼고 있다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무엇을 찾고 있다
하얀 쌀밥 같은 모습에 이끌려 다닌다
허기 앞에 고개를 숙이느라 날개짓을 잊고 있다
눈을 쪼던 부리에는 물기만 묻어난다
거듭되는 헛된 입질에도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짓이 저렇다
2. 뒷짐 - 이정록 시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자신의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 뿐인 줄 알았지
등 뒤에 양손을 얹자 기대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어깨 위로 억새풀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다는 것은
허공 한 채를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밀쳐놓은 빈손 위에
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3. 멀고 먼 숲 - 김행숙 시
강을 건너 들판을 지나
험한 길 걸어도
쉬지 않고 걸어가면
어느 날 당도할 수 있을까
잎사귀엔 향유처럼 흐르는 햇빛
숲에 깃든 어린 벌레들
떡갈나무 잎에 스치는 바람
종일 나무들이 수런되며
말 거는 숲
눈보라 휘말리며 비바람 일어도
묵묵히 걸어가리
눈갈 머무는 자리마다 싹이 트는
언젠가는 내가 가 닿을
그 곳
멀고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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