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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치와 경제를 뒤흔든 역관 장희빈가

by 선라이저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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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덕일이 쓴 '조선 최대 갑부 역관" 중 숙종 때 장희빈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1. 조선 시대 역관은 누구인가

 

 조선시대 역관은 직업 외교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 무역상이었습니다. 양반 사대부들은 역관의 이런 성격을 천한 상인이라고 멸시하였습니다. 사대부들이 농업을 우대하고 상업을 천시하는 사농공상의 태도를 취했던 것은 지주였던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반영한 결과일 뿐입니다. 역관들이 중국에서 사오는 물품의 최종 소비자는 바로 양반 사대부들이었고, 그 구매대금은 농민들이 납부한 소작료이었습니다. 

 

 게다가 역관의 외교경비는 국고에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국가는 역관에게 국제무역의 권리만을 주었습니다. 역관들에게 국제무역은 부의 축적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외교경비 마련을 위해서도 필수이었습니다. 그래서 역관들은 국제무역에 나섰고 일부는 조선 제일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2. 조선 후기 역관 명가들

 

 역관들은 비록 중인의 신분이었지만 국왕과 대신 등 권력자와 지근거리에 있으며 해외에 드나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보통 중인들과는 달랐습니다. 게다가 조선에서 뛰어난 부자였기에 명가 대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역관을 선발하는 역과도 몇몇 가문에서 급제를 독점해서 역관 명가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세 가문이 유명한데 밀양 변씨, 우봉 김씨, 인동 장씨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동 장씨는 역관의 틀을 뛰어넘어 한 때 정치 명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인동 장씨는 처음부터 중인 집안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장맹저가 조회나 제사 의식을 맡은 통례원 통찬을 지내면서 그의 자손들이 역관 가문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유명한 사람이 장현입니다. 장현은 아버지와 삼촌이 유명한 역관이었습니다. 장현은 왕실의 종친들과도 친하게 지내었고 종친들이 남인들과 친하면서 남인이라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숙종 1년 숙종의 외할아버지인 김우명이 종친들을 고변하였는데 집권당이었던 남인들은 이를 무고로 몰아갔습니다.  

무고에 대한 왕의 벌이 내려지기 직전 숙종의 모친인 대비가 숙종에게 읍소하면서 문제는 절충적으로 해결이 되어졌습니다. 숙종 6년 경신환국으로 서인들이 집권하면서 관련 종친들이 피해를 입었고 역관 장현은 유배를 갔으나 오래지 않아 돌아 왔습니다.

 

 숙종이 새로 총애하는 후궁으로 장현의 친척인 장옥정(장희빈)이 등장하였고 장희빈을 폐하라는 상소가 있었고 숙종의 모친인 대비가 장희빈을 사가로 내쫓았음에도 숙종은 대비가 세상을 떠난 후 장희빈을 정식 후궁으로 삼았습니다. 장희빈은 여느 궁녀들처럼 가난해서 궁녀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궁녀가 되었습니다. 장희빈의 원래 신분은 여종의 딸이었습니다. 비록 집안의 돈으로 면천을 했지만 인생역전을 꿈꾸고 궁녀 입궁을 자처한 것이었습니다. 

 

 장희빈은 숙종 15년 서인정권을 무너뜨리고 남인이 재집권하는 기사환국의 주역이었습니다. 같은 해 인현왕후 민비를 폐출하고 왕비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장희빈이 왕자를 낳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장희빈은 이제 왕비이자 남인 정권의 사실상 지주가 되었습니다. 남인 정권은 역관인 장희빈 집안과의 연합정권이었습니다.

3. 역관들과 몰락

 

 남인들이 재집권하면서 그 전의 사건들이 재조사를 받으면서 그 당시 심문받았던 역관 박정신, 김기문, 변이문이 다시 끌려나와 엄한 형신을 받았습니다. 남인들은 다수 역관들이 서인정권에 붙어서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후 복수는 복수를 낳게 되었습니다. 죽은 역관의 후손들이 남인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가담하였습니다. 

 

 남인 정권에서 역관 가문인 장희빈 일가가 최고의 명가로 떠오르는 와중에 다른 역관 가문들은 남인 정권 타도를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남인 정권이 이를 탐지하고 이들을 역모로 몰아 수사하는 도중에 이변이 발생하였습니다. 장희빈을 이용한 미인계에 당했던 서인들도 새롭게 숙종의 총애를 받던 궁인 최씨에게 접근해  숙종의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숙종은 한밤중에 비망기를 내려 남인정권을 서인정권으로 갈아치웠는데, 같은 해 장희빈도 왕비에서 폐출되고 민씨가 복위하였습니다. 역관들이 낸 정치자금이 큰 효과를 발휘한 결과이었습니다.

 

 막상 정권을 잡은 서인들은 이들 역관들에게 보답하기는 커녕 철저히 외면하였습니다. 서인들은 정권 획득과정에서는 역관과 상인들의 자금과 인력들을 이용했다가 막상 정권을 잡자마자 이들을 죽여버렸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양반의 배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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