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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베트남의 분쟁사 : 명나라와 베트남의 격돌

by 선라이저 202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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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함께 2019년 다낭을 여행한 후에 맛있는 베트남 음식과 함께 속내를 잘 알 수 없는 듯한 베트남 사람들을 보면서 베트남 역사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중국은 옛적부터 중화사상을 가지고 주변 국가들을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이 남만이라고 불렀던 베트남과 명나라의 분쟁을 중심으로 베트남의 역사를 살펴 보았습니다. 

 

1. 중국의 네 번에 걸친 베트남 복속

 

  남월(베트남)은 연 3모작이 가능한 곡창지대인 하노이 주변 홍강 삼각주를 중심으로 BC 10세기에서 AD 1세기까지  왕국이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BC 2세기 한무제의 침입으로 시작된 1차 복속이 있었고, 중국의 삼국시대에 2차 복속, 이후 당나라때 3차 복속으로 안남도호부가 설치되었습니다. 

 

  중국의 당나라가 망한 후 5대 10국 시대인 939년 베트남은 박당강전투에서 승리해 중국의 1000년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박당강전투는 강 삼각지에 숲에서 베어낸 나무로 수 천개의 말뚝을 만들어 놓고 홍강을 타고 오르는 적군을 기다리면서 강 양쪽에서 매복을 하였고 만조시 작은 배로 유인해 썰물때 공격을 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1404년 호꾸이가가 역성혁명을 통해 왕위를 찬탈하였고 왕자가 탈출하여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는 중에 명나라가 파견한 사신과 왕자가 도중에 살해당하자 명나라는 안남을 정복하는 칙령을 발표하고 홍강의 양쪽에서 침범하였습니다. 1407~1427년 명나라가 네번째로 베트남을 복속하였습니다.  

 

  1418년 베트남에서 람썬 봉기 이후 10년간에 걸친 긴 항쟁이 있었습니다. 명나라의 가혹한 세금과 착취, 강제 동화정책, 무자비한 학살 등으로 황폐해진 나라를 보고 레라이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레라이는 스스로 평화를 가져오는 왕으로 칭하였습니다. 반란군은 초기 연승을 거두며 승리하는 듯 했으나 전면전에서 패배 후에 게릴라전으로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레라이는 베트남 군을 군헌십조를 바탕으로 엄정한 군기를 가진 군대로 이끌었고 마침내 1426년 똣동, 쭉동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명나라 군은 5만명이 전사하고 1만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래도 명나라 군이 물러가지 않자 베트남은 북동쪽 일부 영토를 할양하고 타협을 하였습니다. 

 

 2. 현대에 이어진 베트남의 게릴라전

 

  베트남은 명나라와의 게릴라전에서 승리하였고 이는 현대에 들어와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게릴라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중국에서 등소평이 통치하던 시절인 1979년 2월 17일~3월 16일 중국은 다시 베트남을 침공하였습니다.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할 때마다 홍강의 양쪽으로 들어왔으며 지금도 중국이 홍강 상류인 윈난성에 댐을 만드는 등 중국과 베트남 간에는 분쟁의 불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강은 중국의 상류 구간이 627km, 베트남의 하류구간이 508km입니다. 

 

베트남 지도 : 오랜 분쟁의 역사를 가진 북쪽지역
베트남 지도 : 오랜 분쟁의 역사를 가진 북쪽지역

 

3. 결

 

  베트남은 중국과 1,3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이념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 경제적으로 협력을 하지만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중국에 1000년에 걸쳐 지배를 받았고 홍강 북동쪽의 영토를 명나라에 할양하기까지 했습니다. 두나라는 홍강 상류인 중국의 영토에 댐을 만들어 갈등의 소지가 남아있는 등 복잡 미묘한 관계의 나라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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