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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라는 문명의 전환기에 다시 제자백가가 주는 시사점 (1) 공자

by 선라이저 2025.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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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추석 연휴 끝자락 주말 오후에 숙명여대 부근 갤러리에서 "철의 발명에 버금가는 AI 혁명 시대(문명의 전환기)에 다시 제자백가가 주는 시사점 (1) 공자" 강의를 듣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강사는 SK에서 임원을 하셨던 분으로 제가 신입사원때 근무하였던 기획 부서의 선배이기도 합니다. 3시간 반 동안 이어진 강의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1. 왜 다시 제자백가를 공부해야 하나

 

  철의 발명과 버금가는 AI 발명에 따른 패러다임의 변화는, 새로운 도구의 사용으로 생산력의 비약적 증가, 성능 좋은 신무기의 등장, 부국강병과 물질적 이익 우선, 약육강식의 New Normal,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 제시의 미흡, 인간다운 삶의 소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는 인간의 해방과 질서의 회복 방법으로 극기복례(공자), 마음(맹자), 신상필벌(한비자), 무위자연(노자), 사랑(묵자), 병법(손자)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에 하나라와 상나라(수도가 은이라서 은나라라고도 하였으나 이제는 상나라를 많이 사용)가 있었고, BC 11세기에 주나라가 등장했다. 주나라는 BC 770년 서융의 침입으로 수도를 동천해 東周(동주)로 칭하게 되었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실시했다. 周의 동천 이후 BC 476년 주나라가 한, 위, 촉나라로 3등분할 때까지를 '춘추시대'라 부르고, 이후 진나라에 의한 전국 통일(BC 240년)까지를 '전국시대'라 합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Spring and Autumn Warring States Period)'는 전쟁이 일상화된 시기였다. 정치적 분열과 도덕적 위기가 있었으며, 약육강식으로 생존이 최고의 목표인 시대였습니다. 민중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시기였고, 이러한 시기에 공자가 나타났습니다.   

 

  공자는 춘추시대(BC 770~BC 476년) 주나라의 제후국인 노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구였고 자는 중니였습니다. 공자는 시경과 서경을 정리하고 주역에 해석을 달았습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사상을 편찬한 것이 논어입니다.

 

  공자가 정치사상을 정립한 후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14년간 전국을 주유하였으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왕이 아무도 없어 고향 노나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습니다. 공자는 주나라를 세운 주공을 숭상하였으며 유교는 제자백가의 하나로 성립하였습니다. 진나라의 분서갱유를 겪은 후 한나라에서 유교는 주류사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주희가 성리학을 완성하였습니다. 

 

  조선은 유학(성리학) 철학자들이 500년간 다스린 나라였습니다. 조선 왕조를 유지했던 동력이 이 철학의 힘이었으며, 나라 잃은 비운을 맞이 한 것도 이 철학 국가의 한계였습니다. 

 

2. 공자의 사상

 

 學

 

 논어의 첫 글자는 學으로 시작합니다. 學而時習之면 茀亦說乎아. 

이는 학문을 닦고 스스로를 수양하며 성품을 완벽히 하고 시습하여 실행함으로써 타인을 편안하게 해주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인재가 되는 것과, 그리하여 어지러운 천하에 질서를 가져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리더를 군자라 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소인이라 명명하였습니다. 

 

 仁

 

 유학의 최고 목표는 인을 갖춘 군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이란 인간됨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유학에서 공자의 도는 인입니다. 도는 군자가 배움을 통해 근본을 세우고 修身함으로써 생겨 납니다. 인은 효에서 나옵니다. 제대로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이자 도의 원천은 바로 효입니다.

 

 孝

 

  동몽시습에는 천지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고 사람을 귀히 여가는 것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오륜 중 가장 첫번째로 여기는 것이 부자유친(효)입니다. 

 

 禮

 

 공자는 효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예를 제시했습니다. 공자는 예의 쓰임으로 조화를 귀히 여겼습니다. 和而不同으로, 어울리되 각자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예가 조화를 긍정적으로 추구하지만 절제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를 예절이라고 하였습니다.

 

 樂

 

 예를 완성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樂(음악과 시)입니다. 예가 天地之別이며 악은 天地之和입니다. 예는 분별을 위한 것이며, 악은 조화를 지향합니다.  

 

 聖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14년간 천하를 주유하면서 안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자를 4대 성인의 반열에 두는 것입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名

 

  만일 공자에게 정치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하자 공자는 용어부터 정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恕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마음에 품고 실천해야 할 한 단어를 묻자 공자는 그것을 恕(용서할 서)라고 하였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에 견주어 헤아려야 합니다.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자는 이를 타산지석이라고 했습니다. 칸트도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공자 사상
공자 사상

 

3. 결

 

 공자의 사상이 나타내는 말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됩니다.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이다. 

 

 지식을 쌓기만 하고 자기 생각이 없으면 허망한 일이고,

 생각만 하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잡는 선무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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