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022년 2월 22일부터 3월 2일까지 7박 9일간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 SK 선배를 만나 '이집트 여행기'를 들었습니다.
1. 이집트의 역사, 신화와 영생
이집트의 역사는 BC 3,150년 초기 왕조시대부터 시작해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시대를 거쳐 마케도니아계가 이집트 왕이 되는 프롤레마이우스왕국시대(BC323~BC 30년)와 로마의 속국시대(BC 29~AD 640년)를 거쳤습니다. 641~1709년까지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나일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면서 농지 유실이 일어났고 이에 기하학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법이 발달하였습니다. 여성에게 상속과 거래가 허용되었고 노예도 재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왕은 인간과 다른 신으로 왕족간의 근친 결혼에 의해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였습니다.
태양의 신 '라'은 두 딸이 있었는데, 하늘의 여신 '누트'와 진실의 여신 '마아트'였습니다. 첫째 딸 누트는 땅의 신 게브와 결혼해 오시리스, 세트, 이시스, 네프리스를 낳았습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결혼했습니다. 오시리스는 녹색 얼굴과 피부를 가졌는데 생명의 신이자 부활의 신이었습니다. 이시스는 모성의 여신이었습니다.
오시리스와 아시스의 아들인 호루스는 매의 머리를 가진 모습인데, 머리 위에는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파라오를 상징하며 이집트의 수호신입니다. 해와 달의 눈을 가져 세상을 꿰뚫어 보며, 호루스의 눈은 파라오의 힘을 상징하였습니다.
태양의 신 '라'의 둘째 딸인 마아트는 지혜의 신 '토트'와 결혼했습니다. 토트는 따오기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집트인은 영생을 추구해 사람의 심장에 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천칭(저울)에 한 쪽에는 심장과 한 쪽에는 타조의 깃털(진실의 여신 마아트의 무게)를 올려 깃털보다 가벼운 사람은 천상에서 부활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나일강 동쪽은 산 자의 땅(검은 색)으로 기름진 땅이고 서쪽은 죽은 자의 땅(붉은 색)으로 사막이었습니다.
2. 이집트의 종교개혁의 시도와 실패
신왕국 제18대 왕조 10대 파라오인 아케나톤(태양신 아톤에게 이로운 자, 아멘호테프 4세)은 아문 중심의 다신교에서 태양신 아톤을 숭배하는 유일신 신앙을 도입하였습니다. 이는 신관, 제사장의 강화된 힘을 견제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아케나톤이 죽은 후 아톤 신앙은 소멸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르 지방에 살았고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는데 야곱은 이집트로 이주했습니다. 야곱의 아들인 요셉(기근으로 부터 구한 자)은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4대손인 모세(히브리어로 불에서 건져내다는 뜻)는 투트모스 1세의 공주 하트셉수트가가 구해 냈습니다.
3. 이집트의 고왕국시대 피라밋과 스핑크스
사카라 지역의 계단식 피라밋(조세르왕)은 기자 지역의 높이 146m, 40층 건물 높이의 대피라밋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피라밋 표면은 매끈한 마감재를 사용하였으나 후세 사람들이 이를 뜯어가 재활용하여 울퉁불퉁한 돌만 남았습니다.
스핑크스 하면 기자 지역의 대피라밋 앞의 대스핑크스를 떠 올립니다. 왕의 얼굴로 추정되는 사람 머리와 엎드린 사자의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대스핑크스는 몸의 길이가 73m, 높이 22m, 얼굴의 폭이 4m, 귀의 길이 1.4m, 입의 길이 2.3m, 코의 길이 1.7m입니다.
스핑크스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시절 이집트와 거래하던 그리스 상인들이 그리스 전설의 스핑크스의 이름을 붙인데 기원합니다. 원래는 그리스 상인들의 은어였으나 프롤레마이우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스핑크스라는 명칭이 통용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이 천년을 지배하면서 스핑크스라는 명칭이 정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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