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세재1 유성룡의 징비록 (1) - 신립장군 몇 년전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들어오는 경계인 문경새재를 제3관문부터 제1 관문까지를 걸어서 넘으면서 왜 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이 조령을 지키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후퇴하는 선조와 함께 하였던 유성룡의 징비록 속에 그 해답이 있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신립 장군의 사람됨 : 장수로서 자질 부족 임진왜란 직전 1592년 봄 선조는 신립과 이일을 보내어 변방의 군비 상태를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이일은 충청도와 전라도로 가고, 신립은 경기도, 황해도가 갔다가 한 달이 지나 돌아왔습니다. 점검한 것은 활과 화살, 창, 칼 따위 뿐이었고 군현에서는 모두들 형식만 갖춘 것을 가지고 법망을 피하며, 달리 방어에 대한 좋은 계책을 마련한 것이 없었습니다. 신립은 평소에 잔인하고 포악하다는.. 2022. 10. 2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