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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옆 정동길, 하비브하우스까지 가 봤니?

by 선라이저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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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역사 이야기' 책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덕수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와 하비브하우스를 알아 보았습니다. 

 

1. 하비브하우스란

 

  서울시청 전철역을 나와 정동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서 쭉 가면 입구에서 부터 경찰이 상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곳이 나옵니다. 들어가 보고 싶지만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미국 대사관저인 하비브하우스(Haviv House)입니다.

 

  하비브하우스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부속 건물이자 주한 미국대사의 거주시설인 외교공관 관저입니다. 1971년 초반 주한미국대사인 하비브가 재임 중에 기존 한옥을 재건축하여 지은 대사 관저입니다. 서울에 있는 각국 대사관 중 한국 고유의 가옥 모습을 지닌 유일한 곳입니다.

 

2. 미국과의 외교관계는 언제 시작되었나요

 

  19세기 말 조선의 쇄국정책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막을 내렸습니다. 이에 일본은 1879년 첫 외교관을 조선에 파견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서울 사대문안에는 외국인의 거주가 하용되지 않아 일본공사관은 서대문 밖에 있었습니다. 

 

  조선은 미국과 1882년 조미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일본 다음으로 서구 열강 중 가장 빨리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 초대 공사 푸트는 정동에 있는 민계호의 집 두 채를 매입하여 한 채는 공사관저(residence)로 사용하고, 다른 한 채는 공사관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미국공사관은 사대문 안으로 들어온 최초의 외국공관이었습니다.

 

  미국공사관은 1900년경에 한옥 내외부를 개조하였고 하비브하우스는 1971년 하비브가 대사로 와서 기존 한옥을 재건축한 것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 당시 미국은 일본에 우호적이었으며, 그 해 7월 가쓰라테프트밀약을 맺어 일본의 대한제국 합병을 인정하였고, 을사늑약 이후 가장 먼저 공사관을 철수시켰습니다. 

 

 이후 1941년까지 주일미국공사관 소속 주경성영사관으로 기능했고, 광복 후에는 직원들의 합숙소로 사용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미국과의 재수교 이후 주한 미국대사관저로 현재까지 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역사 책 표지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역사 책 표지

 

3. 결

 

  공사관은 정치적인 건물이며 그 나라의 국력과 문화역량을 상대국가에 과시하는 건물입니다. 공사관의 규모는 그 나라가 상대국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를 나타냅니다.

 

  강화도조약 이후 공사관이나 영사관을 서울에 설치한 국가 중에서 자국의 고유한 건축양식으로 짓지 않은 나라는 미국과 일본 두 나라였습니다.

 

  일본은 서양식 공관을 지음으로써 자국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과시하려고 하였습니다. 미국은 매입한 한옥을 유지한 채 자국 건축양식으로 공사관을 짓지 않았습니다. 이는 조선이 가까운 미래에 일본이나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관파천 당시 조선 정부는 미국공사관에 수 차례 파천의사를 전하였으나 미국 정부는 완강히 거부하였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당시 미국이 공사관을 가장 먼저 철수한 것도 그 당시 미국의 외교적 입장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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