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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작한 영국 자동차산업이 미국에 밀린 이유

by 선라이저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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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의 역사

 

  1700년대부터 증기기관을 이용한 자동차가 도로를 달렸고 1826년에는 22명이 탈 수 있는 버스 형태의 증기자동차가 영국 런던에서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자동차라고 부르는 모습은 1900년 초반에야 보여졌습니다.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고 고무로 된 타이어를 붙였으며 둥근 스티어링 휠과 라디에이터 등을 갖추었습니다.

 

 본격적인 자동차의 시작은 어떤 엔진을 정착했는지로 구분됩니다. 독일의 칼 벤츠가 페이턴트 모터바겐에 가솔린 단기통 엔진을 얹어 1886년 특허를 받았고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고틀립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 역시 이미 만들어진 가솔린 엔진을 마차에 탑재했습니다.

 

 증기기관자동차와 느리고 주행거리가 짧았던 전기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던 시절에 메르세데스는 무려 9293cc의 초대형 엔진을 장착한 내놓았습니다. 최고속력은 무려 시속 117km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시속 71km의 자동차가 나왔으며 1906년까지 개량을 이어가서 691대가 생산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자동차 개발이 한창이던 때에 미국에서도 자동차 개발이 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일부에는 전기자동차가 달렸고 이를 위한 전기차 충전시설도 설치되었습니다. 자동차 대량 생산으로 유명한 헨리 포드는 186년 첫 차를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로버자동차는 최초의 4륜 구동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로버트 제퍼슨과 로버트 웰라스가 이 차를 타고 영국에서 터키 이스탐불까지 첫 유럽 횡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2. 영국의  자동차산업 발전을 막은 과잉규제 '적기조례'

 

  1834년 영국의 귀족 존 스콧 러셀이 만든 증기자동차가 승객 21명을 태우고 글래스고를 출발해 언덕을 오르다가 엔진보일러 폭발로 화부와 승객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이에 증기자동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는 것은 당연했습습니다. 증기자동차는 괴물로 간주되어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가장 강하게 반발한 곳은 당시 대중교통을 담당했던 마차업계였습니다. 증기자동차는 마차의 2배 속도였고 최대 탑승 인원도 28명으로 2배였지만 요금은 반값이었습니다. 마차 업주들과 마부조합은 증기자동차를 규제하라고 영국 의회에 청원을 끊임없이 넣었습니다. 말과 사람이 놀라 위험하다는 게 명분이었습니다. 증기자동차의 경쟁자인 철도업계도 손님을 잃게 되자 청원에 동참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은 여론에 민감합니다. 영국 의회는 먼저 증기자동차에 마차보다 10~12배나 비싼 도로 주행세를 물렸습니다. 이어 1861년 증기자동차의 최고속도를 시내에서는 시속 8km, 교외는 16km로 제한하는 차량조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1865년에는 기존 조례를 대폭 강화한 적기조례를 만들어 빅토리아여왕의 이름으로 공표했습니다.

 

 적기조례는 위험을 알리는 붉은 깃발에서 유래했는데,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적기조례에는 증기자동차의 최고속도를 시내 3.2km, 교외 6.4km로 제한했습니다. 또한 운전자, 기관원, 붉은 깃발을 든 신호수 등 3명이 탑승해야 했으며 신호수는 차량의 55m 앞에서 걸어가며 마차가 지나갈 때 운전자에게 신호를 보내야 했습니다. 

 

 적기조례로  인해 번창하던 증기차 버스업계에 제동이 걸렸으며 증기차 버스는 도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과잉규제라는 논란에도 적기규제는 1896년 폐지될 때까지 31년간 존속되었습니다. 그동안 영국의 자동차업계는 쪼그라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거리가 줄어든 자동차 기술자와 사업가들이 해외로 빠져 나갔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하자 성능이 떨어지는 증기자동차는 구세대의 유물로 전락하였습니다. 자동차산업을 선도해 왔던 영국이 거꾸로 추격자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경쟁국들은 적기조례 같은 규제를 도입하지 않고 영국에서 이탈한 기술자들을 받아 들였고 그 결과 벤츠가 1885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였습니다.

 

3. 총평

 

 오늘날 적기조례는 산업을 망하게 한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마차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마차와 자동차 모두를 잃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황당한 법이 아니었습니다. 적기조례는 오히려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규제는 그렇게 생겨납니다. 기존 경제질서에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정치인을 움직여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게 보통입니다. 기득권 집단에는 혁신이나 발명이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적기조례는 과거에 갇혀 미래를 보지 못하는 규제의 폐해를 보여 주었습니다. 발전을 거부하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제도는 국가의 운명까지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공유차량인 우버나 공유숙박인 에어비앤비 등 새로운 사업이 택시업계나 숙박업계 반발로 국내에서 내국인 대상으로 허가받지 못하는 것도 유사한 사례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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