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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세운 예술 베네치아(2) - 문화

by 선라이저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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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 두번째 이야기는 베네치아의 문화입니다. 

 

1. 베네치아 카니발과 무라노 유리예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베네치아의 이미지 중 하나는 형형색색의 가면을 쓰고 파티를 즐기는 카니발이다. 가장 베네치아 다운 축제인 카니발은 세계 최고의 축제로 발전했고, 해마다 카니발 시즌의 산 마르코 광장은 가면을 쓰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핵심가치는 자유, 평등, 관용이다. 이 축제는 일반 시민들에게 자유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에서 출발했다. 가면을 쓰고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베네치아에서 카니발이 공표된 것은 1296년이며, 가면축제는 18세기 바로크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에 이어 베네치아를 점령한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의 결정에 따라 1797년부터 카니발축제는 금지되었다. 지금의 카니발이 부활된 것은 1979년부터이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가면은 얼굴 전체를 가리는 바우타다. 희색으로 된 남녀 공용 가면으로 보통 모자를 쓴 채로 착용하고 얼굴을 제외한 부분은 망토로 몸을 가린다. 흑사병을 치료하던 의사들의 가면인 메디코 델라 페스테는 검은 색 망토로 온 몸을 덮고 있고, 얼굴은 부리가 긴 검은 새 모양을 하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면인 볼톤는 얼굴 전체를 가린다. 원래는 흰색이었으나 최근에는 금박을 입히거나 악보나 그림을 그려 넣어 장식을 한다. 얼굴 전체를 가리기 때문에 볼토 가면을 쓰고 식사를 하거나 물을 마실 수는 없다. 완벽한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약간 무서운 느낌마저 드는 가면이다.

 

  베네치아 카니발은 이별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항구도시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군인들이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의 마지막 도시 베네치아에서 카니발을 즐겼다.

 

  무라노는 베네치아 본섬의 중심으로부터 약 1.5km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다. 1291년 베네치아 정부는 모든 유리공예 제작자들에게 공방을 무라노섬으로 이전하라고 명령했다. 유리를 제작하기 위해 만드는 화로가 베네치아에서 자주 대형 화재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방조치였다.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유리공예 산업을 한 곳에서 집중 보존하고 육성하면서 동시에 특수한 유리제작 기술이 외주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베네치아 본섬에서 추방되다시피한 유리공예 장인들이 반발하자 베네치아 정부는 이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무라노로 이전하게 된 모든 유리공예 장인들에게 세금감면 혜택과 함께 특별법으로 그들의 신분을 보호하며 외부로 유리공예 기술을 이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대대로 기사계급을 인정해 준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런 조치들 덕분에 무라노의 유리공예 산업은 1000년을 넘어 지금도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무라노는 눈부신 햇빛과 형형색색의 유리공예품들이 선사하는 화려한 색깔로 이 섬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곳이다. 유리 마에스트로는 20년 이상을 일해야 얻을 수 있으며, 무라노에는 마에스트로가 200명 정도 있고 마에스트로 1명당 2명의 조가 짝을 이루어 일을 한다.

 

  1800도의 뜨거운 가마에서 탄생하는 무라노 글래스는 70%의 모래와 결합되는 원료 간의 화학반응으로 빛깔과 모양을 가진다. 고온의 액체 상태로 흘러내리는 재료를 막대 끝으로 빙빙 돌리며 불어가면서 형태를 빚고 무늬를 낸다. 모양이 완성된 제품은 별도의 가마에 넣고 하루 정도 온도를 천천히 내려 준다. 단단한 조직을 갖게 만드는 과정이다.

 

2. 곤돌라와 운하 문화

 

  베네치아의 수상 간선도로인 카날 그란데(대운하)는 길게 뻗어 있는 역S자 모양이다. 산타루치아역에서 산 마르코 광장까지 이어지는 카날 그란데는 간석지와 그 사이에 있던 수로를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그런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곤돌라는 1094년 기록에 처음 등장한 이후, 베네치아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활용되었는데, 한창 전성기였던 15세기에는 약 1만 대의 곤돌라가 운영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곤돌라는 17세기부터 사용하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길이가 11m, 폭이 1.4m이고, 선체의 무게는 350kg이다. 1대의 곤돌라는 2개월 정도의 완전 수작업을 거쳐 제작된다. 장인들의 철저한 분업으로 건조되는데, 완성된 곤돌라는 약 4만 유로의 가격에 팔린다.

 

  보통 4명의 곤돌리에들이 운행시간을 나누어 1대의 곤돌라를 운영하는데, 현재 베네치아에는 약 400(최대 425명으로 제한)의 조합 면허증을 가진 곤돌리에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정식 곤돌리에가 되려면 조합에 가입하고 6개월 동안 400시간의 훈련을 거친 다음 관광가이드 자격증과 외국어 소통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곤돌리에는 베네치아에서 고수익 직종으로 분류되는데, 매년 15만 유로 이상을 버는 곤돌리에도 있다고 한다.

 

베네치아 가면 볼톤
베네치아 가면 볼톤

 

 

메디코 델라 페스테
메디코 델라 페스테

 

 

바우타
바우타

 

3. 베네치아와 예술

 

  관광 시즌이 되면 베네치아에서는 거의 매일 밤 비발디의 사계가 연주된다. 베네치아에는 나폴레옹 시대에 폐쇄된 성당 건물들이 많은데, 여러 곳이 작은 연주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90여 곡이 넘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수많은 종교음악을 탄생시킨 이 예술가는 우리에게 베네치아에서 계절마다 연주되는 사계로 기억되고 있다. 비발디는 1717년 만토바의 궁정 음악가로 초청을 받아 3년간 일하면서 바이올린 콘체르트인 사계를 작곡했다.

 

  베네치아에는 이탈리아 3대 오페라 극장인 라 페니체 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 주세페 베르디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1851년 초연되었던 리골레토와 1853년 초연되었던 라 트라비아타(1막 축배의 노래)도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베네치아의 일상을 지배한 것은 6개의 스쿠올라였는데, 스쿠올라는 카톨릭 교회의 각 교구에 속한 일반 성도(남성)들로 구성된 친목단체였다. 이들은 도시 곳곳에서 자선활동과 봉사활동, 카니발과 같은 축제의 절차를 관장했다. 베네치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스쿠올라(Scuola) 건물은 2층 구조로, 1층은 미팅 홀이며 2층은 회원 전용의 공간이었다. 스쿠올라 산 마르코의 2층에는 틴토레토가 그린 성 마르코의 생애 연작이 있다. 그는 산 로코에도 2층 임원회의실 벽면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1565)을 그렸는데, 베네치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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