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장군보 '기장사람들'에 실린 국악인 김준호씨가 쓴 '미역 -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라는 글입니다. 김준호씨는 국악인이자 풍속학인입니다. 방송에서 부인인 손심심씨와 함께 부부가 국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 내가 살고 있는 곳 기장 바닷가
우리집 앞 기장 바다는 파란 잉크를 푼 것 같이 바닷속 두 길 깊이까지 속이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참 동해이다. 그 곳에는 겨울의 찬 기운에도 불구하고 심을 곳곳하게 세우고 조류에 잎을 이리저리 일렁이며 짙은 미역이 숲을 이루며 살고 있다.
미역이라는 말은 '미+역'의 합성어로 물에서 나는 여뀌라는 뜻이다. 여뀌는 잎이 풍성해서 미역과 모양새가 비슷하며 매운 맛이 지독해서 양념으로 많이 쓰이는 채소의 일종이다.
기장 앞바다는 옛부터 곽전이라고 불린 유명한 미역밭이었다. 그 미역밭을 해마다 좋은 품질의 미역이 많이 자라 조선 왕실이 직접 관리를 할 정도였다.
2. 미역,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
옛적에 진시황이 서불에게 명하여 불로장생의 불로초 선약을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오백을 실은 선단을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 동쪽으로 보냈다. 그가 불로초를 찾기 위해 상륙한 곳곳에는 '서불과차(서불이 이곳을 다녀갔다)'라는 명문을 돌에 새겨 놓았는데, 남해의 양아리바위, 매물도 석벽, 제주도 정방폭포 등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불로초를 찾으러 산과 섬만 돌아다니다가 실패하고 돌아가고 만다. 서귀포라는 이름은 서불이 불로초를 못 찾고 돌아갔다고 붙은 이름이다.
불로초가 그렇게 쉽게 눈에 띈다면 선약이 아니었다. 서불이 애타게 찾던 불로초는 바닷속 깊숙이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미역이었다.
8세기 경 당나라 서견은 호학기에서 고구려인들은 고래가 몸을 풀고 미역을 뜯어먹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따라 미역국을 해산 식품으로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탄생음식으로 미역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먹었던 유규한 역사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진시황도 못 먹어본 불로초 생미역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쌈을 싸 먹고 (멸치) 젓갈에 찍어 먹고 나물로 초무침도 해 먹는다. 그래서 본격적인 미역 철 겨울 두 달 정도는 바닷속에서 캔 이 불로초를 입에 달고 살고 있다.
서불이 삼신산만 쳐다보고 다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바닷속을 봤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3. 결
제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15년 이상 우리 집의 주업은 미역 양식이었습니다. 어촌계에서 양식 미역에다가 돌미역도 했습니다. 돌미역 포자가 날아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수 십명이 모여 겨울철 바닷물 속 바위를 깨끗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기장산 돌미역은 양식미역의 3배가 넘는 가격에 생산되는 양도 매우 적습니다.
미역은 미역 줄기, 미역 귀, 미역 국, 미역 쌈, 미역 나물, 미역 초무침 등 다양한 요리가 가능합니다. 기장 미역은 111일 바다에서 자라 2월부터 시작해서 3~4월까지 캡니다.
ps : 제가 지인들과 몇 번 가본 미역국을 잘 끓이는 식당은 일광해수욕장 근처 어부밥상입니다. 주인장이 어부이고 일광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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