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역사, 문화 그리고 건축의 세반째 시간은 건축입니다.
1. 건축적 특징 (수상도시 특유의 구조)
베네치아가 수상도시로 불모지에 세워졌다는 것은 기적이다. 석호 내부의 모래톱, 개울, 갯벌, 자갈 지형은 하부구조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정교한 기초가 필요했다. 처음에 이것들은 서로 90도 각도의 세 개의 층으로 겹쳐진 두꺼운 낙엽송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뗏목 형태였다. 이 뗏목은 물속에 남아있는 벽돌 기초를 지탱했다. 다음 단계인 불침투성의 이스트리아 석조층은 썰물 때는 노출되고 밀물 때는 숨겨진다. 이 체계는 모든 초기 건물에 사용되었다. 최근 발굴 조사에 따르면, 물에 잠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5세기 동안 여전히 기초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후기 르네상스 시대 건물들은 적어도 6m 이상의 더 깊은 기둥을 사용했다. 이 기둥은 모래와 실트를 통과해 더 안정성있는 카란토층이라는 응고된 점토층까지 이어졌다. 1591년 리알토 다리를 재건하기 위해 12,000개의 느릅나무 더미가 기초로 필요했고, 사치스러운 바로크 양식의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은 견고한 하부구조를 위해 115만 6,657그루의 참나무와 낙엽송을 소모했다. 기초를 더 견고하기 위해, 분쇄한 대리석과 석회암 더미를 밀봉해 밀어 넣었다.
기둥 더미는 수동 조작 드롭 해머를 사용해 박았다. 지금은 유압 구동장치가 이 번거로운 작업을 놀랍도록 쉽게 수행한다.
2. 베니치아의 주요 건축 양식
베니치아의 건축 초기 원형은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지어진 고대 로마 바실리카 양식의 토리첼로 대성당이다. 그러나 베네치아가 명목상 동로마에 의존하게 되면서 건축물들은 점차 비잔틴 양식(로마의 판테온을 모델로 한 돔 형식의 건물)으로 디자인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에서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산 마르코 대성당’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대저택을 팔라초라고 부르는데, 대운하와 대운하 해변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팔라초들은 비잔틴-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으로 발전되어 갔다. 베네치아 건축의 역사와 거의 동일하다.
13~14세기 베네치아의 ‘고딕 양식’은 엄격한 초기 고딕이 아니라 중세 말기의 고딕, 즉 불타오르는 것처럼 화려한 고딕 양식이다. ‘두칼레 궁전’의 남쪽 파사드(건물의 얼굴)에서 그 전형적인 표현 기법을 알 수 있다.
15세기부터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었다. 본질적인 보수주의와 안정에 대한 열망은 15세기 중반까지도 고딕 양식이 번창하도록 하였으며, 그로 인해 베네치아에는 뒤늦게 르네상스의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이 시기는 이전 시기에 비해 심플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많아졌다.
16세기 말, 르네상스 양식이 퇴조하고 ‘바로크 시대’가 시작되었다. 살루테 성당을 건축해 베네치아의 풍경 자체를 바꾸어 버린 발다사레 롱게나에 의해 시작된 양식이다. 파사드에서 음양이 느껴질 정도로 장식이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내부의 장식도 모두 바로크 건물의 특징이다.
3. 베네치아의 대표 건축물
1) 산 마르코 대성당(황금 모자이크, 비잔틴 양식)
‘비잔틴 양식’의 산 마르코 대성당은 동방과 서방을 잇는 비잔틴 예술의 결정체이다. 두칼레궁전이 베네치아의 정치적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면, 산 마르코 성당은 종교적 권위를 상징한다. 베네치아의 도제는 막강한 정치적 권력을 부여받았지만, 늘 종교적 권위를 빌려와야만 했다. 베네치아에 들르면 가장 먼저 들르는 산 마르코 광장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에는 제4차 십자군 전쟁에서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4마리의 청동말 등 수많은 전리품들이 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내부는 ‘황금의 성당’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산 마르코 성당은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프레스코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자이크로만 내부를 장식한 곳이다.
2) 두칼레 궁전 (공화국 정치의 중심지, 고딕 양식)
원래 리알토 다리 부근에 있던 도제의 관저는 화재로 유실되었고, 1172년 현재의 자리에 두칼레 궁전이 건축되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파사드는 최초 건물에 적용되었던 비잔틴 양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의 섬세함이 빛나는 ‘고딕 양식’으로 두칼레 궁전이 신축된 것은 1340년으로, 확대되어 가는 도시국가 규모와 이에 비례해서 필요해진 행정관료 때문이었다.
각각 독립된 도제의 궁전과 집무실, 대회의장, 의회 건물, 사법부, 재판소, 감옥 등이 필요했다. 두칼레 궁전은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행정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거쳐 1866년에는 통일 이탈리아로 편입하기에 이르렀으며, 1923년부터 현재의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도제가 손님을 맞는 스쿠도(방패) 방에는 지구의가 전시되어 있다. 17세기에 제작된 것부터 한반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간혹 오래된 지구의 중 한반도가 섬으로 그려진 것도 있는데, 이는 베네치아인이었던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우연히 고려 사신을 만났고 압록강을 건너왔다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고려를 섬으로 판단했다. 어쨌든 마르코 폴로에 의해 고려라는 나라가 유럽에 알려져 코리아가 되었다.
3)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의 대운하(카날 그란데)를 건너는 4개의 다리 중 리알토 다리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 베네치아의 역사는 리알토 구역에서 시작되었다. 5세기 초반 게르만족의 공격을 피해 리알토 부근에 임시 정착촌을 세운 것이 지금의 베네치아가 되었다.
12세기 초반 최초로 대운하를 건너는 리알토 다리가 만들어졌으나, 이후 여러 번의 증개축을 거쳤고, 1255년에 건축된 다리는 중앙 부분이 들려 올라가는 목조 도개교였다. 15세기에 이르러 지금처럼 양쪽에 상점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 임대수익은 다리를 보수하는데 사용되었다.
1551년 목재로 된 리알토 다리를 석재로 대체하는데 무명의 건축가 안토니오 다 폰데가 결정되었고, 1588년 시작된 공사는 1591년 완공되었다. 리알토 다리는 독특한 아치형을 지닌 다리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에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명소가 되었다.
4)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베네치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던 14세기의 흑사병 공격은 1629~1631년 또 한 번의 격심한 피해를 입혔다. 1629년 30년 전쟁에 참전했던 베네치아 군인들이 북유럽인들로부터 집단 감염된 후 잠복기를 거쳐 1930년 카니발 축제에서 확산되었다.
1930년 베네치아 의회는 성모 마리아에게 시민들의 질병 퇴치를 강구하는 성당을 짓기로 했다. 살루테는 건강을 뜻하지만 구원을 뜻하기도 한다. 지금도 매년 11월 21일에는 베네치아 의회에서 살루테 성당을 방문하고 있다. 지금의 위치에 성당이 들어선 것은 매년 축제 때 두칼레 궁전에서 출발하는 임시 선박 가교를 설치할 만큼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출신의 26세 롱게나가 낙점되었고 1631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687년 완공했다. 흑사병 종식에 감사하며 만들어진 둥근 돔과 우아한 외관의 바로크 양식인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은 베네치아의 풍경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롱게나는 거대한 2개의 돔을 기초 위에 올린 살루테 성당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100만개가 넘는 말뚝을 개펄에 박아 넣었다. 그 위에 대리석과 벽돌을 교차시키며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기초공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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