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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역사, 예술 그리고 건축 - (1) 역사

by 선라이저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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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다니는 모임에서 2025년 5월 9일 아침 제가 '물위에 세운 예술 : 베네치아의 역사, 예술, 그리고 건축' 발표를 마쳤습니다. 그 자료를 세 파트로 나누어 올립니다.

 

  물과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동부 내륙의 포강과 피아베강이 아드리아해와 만나는 석호 지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베네토주의 주도로 118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400개의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베네치아라는 지명은 BC 10세기부터 이 지역에 거주해 왔던 베네티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영어로는 베니스라고 부릅니다.

 

찻번 째 이야기는 '베네치아의 역사'입니다.

 

1. 초기 형성 (5~9세기), 중세의 해상 왕국(9~15세기)

 

  베네치아는 서로마제국의 말기에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게르만족과 훈족의 침공이 가속화되던 5세기 초 이탈리아 반도의 북동쪽에 살던 거주민들이 습지였던 지금의 리알토(개펄이 굳어지면서 만들어진 높은 해안이라는 뜻) 지역에 임시 정착촌을 만들면서 삶을 일구었다.

 

  서로마가 멸망한 후 베네치아는 동로마제국의 느슨한 형태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그러다가 로마교황청과 동로마제국의 갈등 속에 교황의 편에 섰다. 동로마제국의 총독이 암살당한 후 리도섬에서 우르구스 히파투스가 726년 초대 도제(통치자)가 되었다. 이후 베네치아 공화정은 약 1100년의 역사를 이어가면서 총 117명의 도제를 배출했다.

 

  베네치아는 810년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샤를마뉴의 아들인 피핀의 공격을 막아냈다. 811년 동로마제국이 도제의 반독립적인 위상을 인정했을 때 베네치아의 지위는 강화되었다. 828년은 베네치아 역사에서 분기점이었다. 베네치아 상인 2명이 이집트의 교역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산마르코의 유해를 돼지고기에 숨겨 몰래 가져와서 도제의 성당(현재의 산 마르코 대성당)에 안치했다.

 

  베네치아는 강력한 해군의 도움으로 아드리아해의 해적을 소탕하고 지중해의 소금 무역 거래를 독점하게 된다. 1205년 크레타를 점령하면서 베네치아공화국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베네치아 역사의 두 번째 분기점은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이었다. 1204년 다소 불같은 성격의 도제였던 단돌로가 주도했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이후 동로마제국의 급격한 쇠퇴를 촉진했고, 결국 1453년 동로마제국은 이슬람에 멸망했다. 동로마제국의 멸망은 동지중해 무역 독점을 통해 승승장구하던 베네치아 경제에 철퇴를 가한 사건이었고,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베네치아 경제를 급속도로 쇠퇴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제4차 십자군 전쟁은 베네치아에 엄청난 패착이었다. 이슬람 세력의 최후 방어막이었던 비잔틴 제국이 쇠락해지자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2. 르네상스와 문화적 전성기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가 베네치아에 도착하는데는 거의 100년이 걸렸다. 중세가 끝난 후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파헤치는 르네상스 시기는 베네치아에 예술, 건축, 과학이 꽃핀 시기였다.

 

  미켈란젤로를 배출한 피렌체가 전통적으로 조각이 강세였던 반면, 베네치아는 벨리니-조르조네-티치아노-틴토레토로 이어진 화단의 회화가 강세였다.

 

  르네상스 예술가로 15세기 말에 활동했던 벨리니는 3명인데, 아버지 야코포와 두 아들인 젠텔레, 조반니 벨리니였다. 밸리니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조반니 벨리니는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보좌에 앉으신 성모자와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피에타’ (1505)가 전시되어 있다. 그의 또 다른 피에타는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반니 밸리니의 제자인 조르조네가 그린 템페스트는 미술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틴토레토가 산 마르코 스쿠올라 벽에 그렸던 노예의 기적그림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베네치아의 모습
베네치아의 모습

 

 

3. 몰락과 현대 베네치아

 

 

  동로마제국 멸망 후에는 오스만제국과 제노바가 베네치아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 베네치아와 오스만 간 전쟁이 수 백년간 이어지면서(1396~1718) 베네치아는 국력이 쇠진하고 결국 동지중해의 패권을 상실하게 된다게다가 바스크 다 가마가 인도양 항해에 성공(1497~1499)하면서 베네치아가 가지고 있던 인도 향신료 무역의 주도권도 포르투갈에게 내주게 되었다.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는 대양 종주를 할 수 있는 함선을 개발하면서 세계 무역시장을 개척해 나갔지만, 아드리아해와 지중해의 잔잔한 파도를 헤쳐나가도록 설계된 베네치아 함선들은 속도와 거리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다14세기 중반 이후 세 번이나 연달아 닥쳤던 흑사병(1348, 1575~1577, 1629~1631)은 한 때 지중해를 호령했던 베네치아가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질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1797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베네치아에 마지막 철퇴를 가했고 5개월 후 오스트리아에 강제 할양해 버렸다. 오랜 정치적 혼란을 거듭한 끝에 1866년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 편입되었고, 이로써 베네치아의 독립국가 시대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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