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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의 임진왜란/정유재란 흔적을 찾아서

by 선라이저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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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제 티스토리 블로그가 구독자 수 500명이 되자 더 이상 신규 구독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2차 하위 도메인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산 기장의 역사를 살펴 보았습니다. 

 

1. 부산 기장의 임진왜란 흔적

 

  기장읍내를 걷다가 봉대산 북쪽 기슭에 있는 기장문화원에서 기장에 남아있는 임진왜란의 기록들을 보았습니다. 

 

  왜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이 동남해안 일대에 쌓은 성을 말합니다. 주로 바다에 근접한 독립된 구릉지대에 축조되었습니다. 1차적으로 임진왜란 시기 1592~1596년 경상도 서생포에서 거제도에 이르는 시기에 축조되었고, 정유재란 시기 1597~1598년에는 울산에서 순천에 이르기까지 8곳에 2차적으로 왜성을 축조하였습니다.

 

 기장에는 죽성리 왜성과 임랑포 왜성이 남아 있습니다. 

 

 왜성은 우리나라의 성곽과는 다른 형태를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성곽은 경계를 표하는 정도로 성벽을 수직으로 쌓은 반면  왜성은 60~70도의 사선으로 기울게 쌓았습니다. 독립된 구를에 위치한 왜성은 방어 및 생활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경사면을 계단식 논처럼 인위적으로 평탄하게 만들었습니다. 

 

2. 기장의 역사

 

 기장은 고려 말부터 3차례 이상 왜국의 침입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었고, 조선 초에 기장에 두모포를 설치하고 연해 방어를 위한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중종 5년(1510년) 두모포진에 石城을 쌓아 수준을 정비하고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였습니다. 

 

 중종 14년 기장은 동래와 함께 경상좌도에 소속되었고 기장에는 현감이 파견되었습니다. 기장현감은 병마절제도위를 겸하여 유사시에는 육군과 수군을 지휘하였습니다. 

 

 기장은 삼국시대 이후 유사시에는 기장읍성 바로 뒤에 있는 기장산성으로 피난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래성의 후면에 있는 금정산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장에 구축된 왜성들
기장에 구축된 왜성들

 

3. 부산을 찾는다면

 

 

  부산에 오신다면 해운대에서 20분 거리의 기장 해안가를 따라 인기 관광지인 죽성리 성당세트장에서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차로 2분 거리)의 죽성리 왜성에도 한 번 올라가 보고 일본의 성과 우리의 성이 다른 점을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의 城 정문은 적과 바로 마주보는 반면, 일본식 城은 입구가 ㄱ자로 꺽여 있어 직접적인 공격으로 부터 보호가 됩니다. 

 

 이를 배워 정조 때 정약용은 수원성을 축조할 때 정문을 보호하는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유재난때는 우리나라 도공들을 요즘 우리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큐슈로 다 잡아간 전초기지였던 이 곳에서 진한 역사 의식을 한 번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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