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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 곽재구 시

by 선라이저 202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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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곽재구 시인의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사평역에서'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1. 사평역에서 - 곽재구 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록이고

  그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속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으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사평역에서 -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 - 곽재구 시

 

2. 소감

 

  이 시는 마지막에 하나의 마침표가 있습니다. 한 호흡으로 쭉 읽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기차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 어려움 속에서 따뜻한 불빛의 감동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동네에서 도자기를 하는 분이 도자기에 쓸 철가루를 구하러 수원 행궁 근처 동래철공소(칼을 갈아주는 곳)를 갔다는 것을 보다가 제가 군대 가기 전 대학 시절 80년대 초 통학했던 완행 비둘기호 동해남부선 동래역이 생각났습니다. 이 시를 찾아서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수원 동래철공소
수원 동래철공소

 

  80년대 막차를 기다리는 고단한 사람들의 지친 얼굴에도 언 손을 녹여주는 톱밥난로가 있어 사람들의 언 마음을 녹여주었습니다. 어려운 그 시대를 그려냈지만 따뜻한 불빛은 사라지지 않아서 다음 세대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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