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곽재구 시인의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사평역에서'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1. 사평역에서 - 곽재구 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록이고
그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속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으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2. 소감
이 시는 마지막에 하나의 마침표가 있습니다. 한 호흡으로 쭉 읽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기차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 어려움 속에서 따뜻한 불빛의 감동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동네에서 도자기를 하는 분이 도자기에 쓸 철가루를 구하러 수원 행궁 근처 동래철공소(칼을 갈아주는 곳)를 갔다는 것을 보다가 제가 군대 가기 전 대학 시절 80년대 초 통학했던 완행 비둘기호 동해남부선 동래역이 생각났습니다. 이 시를 찾아서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80년대 막차를 기다리는 고단한 사람들의 지친 얼굴에도 언 손을 녹여주는 톱밥난로가 있어 사람들의 언 마음을 녹여주었습니다. 어려운 그 시대를 그려냈지만 따뜻한 불빛은 사라지지 않아서 다음 세대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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