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인이 보내준 김경미 시인의 '식사법'과 '멸치의 사랑' 시 두편을 읽어 봅니다.
1. 식사법 - 김경미 시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 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이나 못 죽는 건 아닌지
우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 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2. 멸치의 사랑 - 김경미 시
똥 빼고 머리 떼고
먹을 것 하나 없는 잔멸치
누르면 아무데서나 물 나오는
친수성
너무 오랫동안 슬픔을 자초한 죄
뼈째 다 먹을 수 있는 사랑이 어디 흔하랴
3. 소감
시인은 언어를 부리는 마법사입니다. 세상 모든 일들을 글속에서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서 독자도 상상의 날개를 폅니다.
김경미 시인은 1959년생으로 1983년 비망록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시집으로는 '쓰다 만 편지인들 못쓰랴', '이기적인 슬품을 위하여', '쉿, 나의 세컨드는', '고통을 달래는 순서', '밤의 입국 신사' 가 있습니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바다에서 올라오자 마자 바로 죽어버린다하여 정약용의 자산어보에서는 멸할 멸자를 붙여 멸어라고 했습니다. 멸치는 크기 순으로 세멸, 자멸, 소멸, 중멸, 대멸, 청어, 다포리로 구분됩니다. 멸치는 말린 것 외에도 젓갈이나 멸치회로도 쓰입니다. 5월과 9월의 봄, 가을 멸치 시즌이 되면 기장 대변항 용암초등학교 옆 진주횟집의 멸치회가 생각납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따라오는 가을 멸치가 씨알이 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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