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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개발의 역사(6) - 우주 탐사의 상업화

by 선라이저 2024.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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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 개발에의 상업적 참여

 

NASA는 다목적 우주선의 개발이 지지부진해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예산 부족으로 이를 취소시키자 직접 ISS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는 대신 민간 기업에 이를 아웃소싱시키는 상업 궤도운송 서비스를 진행하였다.

 

여기에 오비탈 사이언스와 스페이스X가 선정되어, 각각 시그너스와 드래곤 1이라는 우주선을 개발하여 NASA와의 계약에 따라 우주정거장까지 화물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후 화물을 넘어 승무원까지 민간 기업이 아웃소싱해주는 상업 승무원 수송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보잉과 스페이스X가 계약에 성공하였다.

 

2015년 12월 8일 NASA는 이제 ISS에 흥미가 없으, 가능한한 이른 시점에 손을 떼고 달과 화성 탐사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러시아는 2024년 이후로 ISS에 탈퇴하겠다고 재확인했으나 2023년 들어 2028년까지 잔류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하였다. 러시아의 우주선에 미국 우주인을 태우는 협정이 2025년까지로 연장되었다. ISS2030년까지 사용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오랜 기간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20246NASAISS가 수명을 다하는 2030년에 폐기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시행업체는 스페이스 X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ISS는 상공 400km의 지구 저궤도를 시속 27,000km로 돌고 있다. ISS는 지구에서 보이는 물체 중에서 태양, 달 다음으로 밝다. 따라서 동 트기 전이나 해질 무렵 매우 빠른 별처럼 지나가는 ISS를 볼 수 있다.

 

2. 스페이스  X의 혁신

 

일론 머스크가 만든 회사 중 가장 주목을 끈 회사는 스페이스X이다. 스페이스X는 우주항공 전문기업이다. 본사는 LA에 있는데, 본사 주변의 도로명도 Rocket Road이다.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창업한 이유 중 하나는 로켓 발사 비용을 1/10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로켓 발사 시장은 정부기관이 독점하고 있었고, 나사와 EU의 아리안 스페이스가 전세계 로켓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로켓 발사 비용은 회사마다 다르고 탑재 위성의 무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대략 한 번 발사에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머스크가 생각하기에 이 비용은 턱없이 비쌌다. 머스크는 로켓을 재활용하면 로켓 발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페이스X를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재활용 로켓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스페이스X의 팰컨 9 로켓은 최대 13톤의 위성을 탑재할 수 있으며, 발사 비용은 약 6,200만달러(868억원)이다.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로켓 재활용의 비법은 역추진 기술에 있다. 우주로 올라간 로켓을 역추진시켜 다시 수직으로 지상에 착륙시키는 것이다.

 

스페이스X가 로켓을 재활용하는데 처음 성공한 것은 20164월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페이스X가 재활용 로켓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이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해낸 사람은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이조스이다.

그가 설립한 민간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 역시 로켓 재활용에 나섰지만 첫번째 활용 성공 타이틀을 스페이스X가 거머쥐면서 블루 오리진은 한 발짝 물러서게 되었.

 

머스크는 2001년부터 지구 종말에 대비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공언해 왔다. 그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스페이스X2022년까지 화성에 화물선을 보내고, 2024년까지 화성에 인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스페이스X12,000개의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전세계 인터넷을 공급한다는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95월에는 스타링크 위성 60개를 한꺼번에 쏘아올리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

 

 

3. 일론 머스크는 누구인가

 

 

스페이스XCEO인 일론 머스크는 미국의 기업가 중 왠만한 사람이 다 아는 테슬라의 CEO이다. 1971년생인 머스크는 캐나다에서 남아공으로 이민을 간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공상과학 등 우주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캐나다 퀸즈대학 제학 시절 집을 빌려 10개 방에 하숙사업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고 방학 때는 파티를 기획했다. 3학년 때 유펜에 편입했다. 그는 경제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1995년 스탠포드 박사과정에 등록했다가 바로 자퇴하고 실리콘밸리로 갔다. 자신이 취업 대신 창업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하루 1달러로 핫도그와 오렌지 만으로 생활하기에 성공했다.

 

같은 해 머스크는 집에서 가까운 피자집 등을 소개하는 지역정보 제공 시스템인 zip2를 창업했고 4년 뒤인 1999년 컴퓨터 제조업체 컴팩에 회사를 250억원에 매각했다. 이후 30대에 온라인에서 결제를 하는 x.com을 창업했다. 같은 건물 1층에 있던 경쟁사 confinity를 합병했다.

 

신혼여행을 갔을 때 동업자와의 불화로 CEO 자리에서 쫒겨났다. 그는 고문 자리에서 와신상담했다. 말라리아에 걸려 6개월을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자신은 휴가 가서 놀면 죽는다는 큰 성찰을 얻었다고 한다. 머스크는 1주일에 100시간을 일한다.

 

머스크는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지 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는 비효율성 발생과 커뮤니케이션 오류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성과로 이야기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와 일맥상통한다. 효율성에 방점을 둔다. 능력없는 사람은 바로 내보낸다.

 

2001년에는 콘피니티의 일부였던 이메일 결제 서비스에 집중하면서 회사 이름도 x.com에서 페이팔로 바꾸었다. 일론 머스크 신화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페이팔의 시총은 1년 뒤 6,000만달러로 치솟았고, 페이팔에 눈독을 들이던 이베이는 15억달러에 페이팔을 인수했다. 페이팔을 매각하여 머스크가 번 돈은 16,000만달러(1,920억원)였다. 이 돈은 머스크가 다른 회사들을 창업하는데 종잣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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