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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보는 안목과 지식경영 리더십 갖춘 정조

by 선라이저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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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한국형리더십개발원' 원장이자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인 박현모 박사가 이야기하는 정조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1. 왜 정조인가

 

  박사 논문을 준빌할 때 처음에는 다산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정약용의 경세유표를 보다보니 정조가 어전회의에서 얘기했던 내용이 정리된 것이 많았습니다. 정조가 하급관리들을 어떻게 의식했는지 궁금해졌고 정조실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정조의 인간적 매력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는 열 살 나이에 아버지의 참담한 죽음을 목도했으며, 할아버지의 명으로 아비의 이름도 부르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반대한 노론의 살해 위협에도 11번이나 시달렸는데 어떻게 절제와 포용의 삶을 살았는지 놀라왔습니다. 

 

 2. 정조의 파격적인 인재등용과 지식경영

 

  정조의 일화 중 "시궁창에 더러운 데 핀 꽃을 봐라.  화원에 있는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인재는 좋은 가문이라고 해서 잘 하는 것이 아니고, 천한 가문이라고 해서 못하는 것도 아닌, 신분을 넘어 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좋은 인재를 써서 나랏일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정조가 생각한 인재 탕평입니다.

 

  조선은 숙종 이후 노론이 거의 100년간을 집권해 정조 때는 당파가 워낙 컸기 때문에 노론이 아니면 대부분 요직에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조는 가장 소외되던 남인 중에서 이가환, 체제공, 정약용 등을 등용합니다.

 

  또 좌제공 우종수라고 불릴 만큼, 일을 협력해서 끌어가는 남인의 체제공과 나랏일이 되게하는 노론의 김종수를 두고 두 정승을 중심으로 견제하게 합니다. 이렇게 정조가 탕평을 펼치며,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에 잘 하려는 마음도 있었고, 실제로 이런 적합한 인재들과 함께 수원성과 같은 많은 일을 진행했습니다.

 

 정조실록에 나타난 정조의 학문적 세계를  보면 생각이 깊고 워낙 박식합니다. 그 중 정조가 논어의 온고지신을 논하며 그 의미를 묻자, 신하 신유경이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배우는게 아닙니까?" 이렇게 모범적인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정조가 "그렇지 않다. 초학자들은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온고지신의 깊은 뜻은 다른 데에 있다. 온고의 고는 옛 고가 아닌 연고, 까닭 고자며 이것은 단지 옛날 책이 아닌 나와 연고가 있는, 내가 읽고 영향을 받은 책, 나에게 의미있는 책을 의미한다."고 하며, "지신도 지(지혜, 지식)가 새로워진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대개 읽었던 책이나 글을 다시 익히면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것을 더욱 더 잘 알게 된다."라고 말하며, "언제까지 계속 새 것을  볼거냐. 그 동안 배운 것, 읽은 책, 경험한 것을 곰곰히 읽고 되돌아보면 내 안목이 높아져서 지가 새로와지니 어떤 것을 봐도 주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데, 계속 새로운 것만 공부하면 평생 지식의 노예가 된다"라고 신하들을 감탄시킵니다. 

 

  정조는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집필도 엄청납니다. 세손 시절에 지은 시만 342편에 달합니다. 정조는 89종류에 걸쳐 2500권의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중 이순신에 관한 '이충무공 전서'도 있고 '난중일기'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일기를 썼지만 그 해의 일기를 모아서 '정유일기' 이런 식으로 연도만 붙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정조가 이충무공의 상소, 장계 등을 다 모아 그에 대한 전서를 컬렉션하고, 전란 중에 쓴 일기를 모아 이름을 붙인 것이 난중일기입니다. 책에 관해서는 최고의 군주였습니다. 

 

 

조선시대 왕이 살았던 궁궐
조선시대 왕이 살았던 궁궐

 

3. 결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에게 기를 북돋아 주는 칭찬하고 다독이면서 믿고 맡기며 큰 욕도 안하는 사람이라면, 정조는 신하들을 끌면서 안 따라오면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 하고, 규장각에서 가르치며 꾸짖기도 합니다.

 

  둘 다 워낙 학식이 깊고, 토론의 달인인데, 세종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오랜 시간이 걸려도 설복시키는 거북이형이라면, 정조는 밤새 끝장토론을 즐기는 청산유수의 능변가로 빠른 판단의 토끼형입니다. 그런데 이게 각각 그 시대에 맞는 일이었습니다. 둘 다 신하들이 같이 일하기는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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