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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이 2차 공격에서 무너진 이유 - 포루의 공사 문제

by 선라이저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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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비록을 다시 읽으면서 떠오른 의문을 하나씩 풀고 있습니다. 진주성이 2차 공격에서 무너진 이유를 류승룡은 포루의 공사문제에서 찾고 있습니다. 

 

 1. 성을 굳게 지키는 묘법

 

 성이라는 것은 마땅히 견고해야 합니다. 1592년 9월 9일 왜군이 평양성에 있었을 때 나는 평양 근처 안주에 있었고 문득 한가지 계책을 떠올렸는데 "성밖에 형세에 따라 뽀족한 성을 쌓고 그 전면과 좌우에 대포 구멍을 내어 대포를 쏠 수 있도록 하면 적은 감히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을 나는 임란 후에 여러 경연에서도 말을 꺼냈었습니다. 1596년 한양 동쪽 수문 밖에 이를 만들려다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이론이 분분하여 그만두고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2. 진주성 포루의 공사 문제

 

 내가 안주(평양 부근)에 있었을 때 벗인 김사순(구미 출신)이 경상 우감사가 되었는데 서신을 보내와 진주성을 잘 수리하여 지킬 계교를 마련한다고 하였습니다. 왜적은 진주성을 이미 한 번 침입하여 패하여 물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김사순에게 답장을 보내어 "왜적은 조만간 반드시 다시 쳐들어 올 것입니다. 왜적이 지난 번 패배를 갚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군사를 사용할 것이니, 성을 지키는 일이 지난 번과 비교하여 어려울 것입니다. 마땅히 포루를 세워 이에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하고 서신속에 그 제도를 상세히 말하였습니다.

 

  1593년 6월에 왜적이 다시 진주성을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종사관에게 진주성에 포루가 있다면 그래도 지탱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켜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얼마 안있어 합천으로 내려갔다가 진주성이 벌써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단성(경남 산청)현감 조종도도 김사순의 벗인데 나에게 말하기를 "지난 해에 진주성에 머물러 있을 때 그가 그대의 서신을 보고 좋은 계교라고 좋아해서 즉시 여섯 곳에 포루를 설치할 것을 생각하면서 나무를 베어 강물에 흘러보내게 하였더니 고을 백성들이 전에는 포루가 없어도 잘 싸워 이겼는데 지금은 왜 사람을 힘들게 합니까 하였습니다. 김사순이 듣지 않고 포루를 만들 재목을 갖추고 공사를 이미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는데 마침 김사순이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였으므로 이 일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하여 서로 이것을 애석하게 여기면서 헤어 졌습니다. 

대포

 

3. 결

 

  1차 진주성 전투를 이겨낸 경험이 오히려 2차 전투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습니다. 작은 성공에 만족하는 것이 더 큰 성공의 앞길을 막는 방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약의 성립과 이행은 별개의 문제라고 합니다. 진주성에 포루를 설치하려고 하는 류승룡과 김사순의 약속(계약)이 있었다고 해도 이행은 더 어려운  것입니다. 언제나 약속은 하나가 아닌 성립과 이행의 2단계의 문제입니다. 성립보다 이행이 훨씬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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