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말에 가까와 지고 날씨가 추워지니 '세한도'가 생각납니다. 오늘은 '나무의 수사학'(우찬제 지음) 속의 세한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세한도 현상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세한도를 소재로 각종 시, 소설, 수필 들이 창작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세로 23cm, 가로 61.2cm 크기로 종이에 그려진 수묵화입니다. 국보 제 180호입니다.
추사는 조선 헌종 시절 중앙에서의 권력을 박탈 당한 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과 서예와 학문을 존경하는 제자 이상적은 역관이었는데, 스승을 위해 연경을 오가며 구한 귀한 책들을 제주도로 보냅니다. 이 제자의 의리에 감사한 마음을 지녔던 스승은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안다"(논어)는 공자의 말씀을 떠올리며 네 그루의 겨울 나무를 그려 답례로 주었습니다.
이 그림을 받고 감격한 제자는 그것을 가지고 다시 연경으로 가서 추사와 교류했거나 그의 문인화를 존중하던 현지 명사 16명에게 이를 보여주고 제영을 받습니다. 그리고 뒷날 이 그림을 본 김정희의 문하생과 오세창 등 20편의 글이 함께 붙어서 긴 두루마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화폭에는 나지막한 집 한 채와 그 양쪽으로 소나무 두 그루와 잣나무 두 그루가 그려져 있습니다.
세한도의 원본은 경성제대 교수를 지냈던 후지츠카가 소장하고 있었는데 후지츠카는 1943년 '원하는 것은 다 드리테니 돌려달라'는 한국인 손재형의 청을 거절하였고 이에 손재형은 다시 일본으로 찾아가 매일 찾아갔고 죽으면 세한도를 물려주라는 유언을 큰 아들에게 합니다. 손재형는 그 말에도 만족하지 않고 다시 청합니다. 그러자 후지츠카는 "선비가 이끼던 것을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보상도 받지 않겠으니 잘 보존만 해 달라"고 함께 세한도를 넘겨 줍니다. 이후 3개월 만에 1945년 3월 10일 그의 서재가 공습을 받아 그의 서재가 불타버렸습니다.
2. 세한도의 세계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된 지 5년이 되던 1844년 그의 나이 59세에 그린 그림입니다. 제주도에서 그는 가족을 동반할 수 없고 출입이 부자유스러운 상태에서 제자 이상적에게서 귀한 새로운 책을 선물 받은 것입니다.
세한도를 그릴 때 추사의 생각은 제사를 통해 나타납니다. 추사의 제사의 핵심논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의 권세에 따라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올곧은 선비가 있습니다. 이는 늘 푸른 송백의 기상과 같으니, 송백 그림으로 그 선비정신을 기리고 싶습니다. 세상의 권세를 멀리하고 지조와 의리를 지킨 제자에게 감사하며, 나 또한 그런 선비정신을 견지하고 싶습니다."
3. 결
세한도는 동아시아의 이념의 토대였던 공자의 논변에 기대어, 인간관계에서 지조의 덕목을 소나무와 잣나무의 상징성에 빗대어 형상화한 그림입니다.
세한도 현상은 김정희의 그림 작업에서 끝나지 않고, 수용 과정에서 각종 담론들을 통해 역동적이고 중층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넘나든 역동적인 소통 과정을 통해 세한도 현상은 추사의 선비정신으로 심화와 확산 과정을 보였습니다. 시와 소설등 여러 작품들을 통해 파급효과도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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