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노라 작가가 쓴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책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알아 보았습니다.
1. 빈센트 반 고흐는 누구인가
어릴 때 반 고흐는 지나치게 평범했습니다. 머리는 나쁘지도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항상 그의 성격과 기질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한동안 큰 아버지가 취직시켜준 구필화랑에서 즐겁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일로 해고되었습니다.
그가 연모했던 하숙집 딸과 목사의 딸로부터 실연을 당했습니다. 두 차례의 실연은 남자로서의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수시로 조울증이 찾아 왔습니다. 이후 성직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자 목사가 되는 시험을 준비했지만 이도 떨어졌습니다.
1885년 3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친척들은 그를 냉정하게 비난하고 나무랐습니다.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그는 파리와 안트베르펜을 오가며 여러 화가들과 만나게 됩니다. 어두웠던 그의 그림에 밝은 색체와 빛이 들어왔고 소묘나 목탄화 위주였던 형태가 걸쭉하면서도 강렬한 유화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가 그림을 잘 그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는 평생 '잘 한다'는 칭찬은 듣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의 그림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자기만족이었습니다.
가수 조용필은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고 노래합니다. 그는 절절히 외로웠고 자주 불행했습니다. 분명한 건 이 때부터 반 고흐 회화의 절대적 특징인 강렬한 색과 터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는 프랑스 아를에서 해바라기 연작을 그립니다. 꽃이나 정물을 그린 화가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활짝 핀 아름다움이거나 봉우리져 있는 수줍음을 그렸습니다. 고흐는 꽃의 자존심을 배려하지 않고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를 그렸습니다. 목을 꺾고 누은 해바라기, 물기가 다 빠져나가 검게 말라가는 해바라기, 씨앗이 빽빽이 박힌 해바라기를 그렸습니다.
3. 반 고흐의 미술관 설립
그는 아를로 온 초기 잠깐 행복했고 더 크게 불행해 졌습니다. 폴 고갱과 심하게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1895년 5월 생 레이 요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는 병원 창가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병원 생활을 하는 1년여 동안 150점의 그림을 그립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별이 빛나는 밤'이라든지, 한 번 잘리면 다시는 뿌리가 나지 않아 죽음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지는 사이프로스 나무가 등장하는 여러 대작들도 이 때 나옵니다. 유일하게 팔렸다는 '붉은 포도밭'도 이 시기입니다.
형이 그림을 그리면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배려한 동생 테오 덕분에 고흐는 아름다운 풍광과 밀밭이 있는 파리 교외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가게 됩니다. 두 달 후 그는 여기서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쏘았습니다. 그의 나이 37세이었습니다.
그는 동생의 첫 아이 조카의 출생을 축복하는 그림으로 '꽃 피는 아몬드나무'를 그렸습니다. 그는 깊고 부드러운 블랙을 원할 때는 목탄을 썼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삶의 가장자리에 닿는 순간이 올 때, 반 고흐는 목탄처럼 깊고 부드러운 신호와 눈짓으로 가장 자리를 이어 나아갈 길을 그려줄 것입니다. 신의 선물인, 내면을 바라보는 그 깊고 따뜻한 눈으로 우리를 격려하고 칭찬해 줄 것입니다.
테오는 형의 이름 빈센트를 아들에게 물려 줍니다. 그 아들 빈센트가 현재 '반 고흐 미술관'의 설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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