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4. 조찬 모임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과 독일의 영토분할'이라는 발표를 들었습니다.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독일과 소련, 일본의 입장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가 2022년 가을 티스토리에 글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흘렀고 이 글은 500번째 쓰는 글입니다. 그 동안 제 글을 잘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리고 글을 읽고 나서는 하단의 좋아요(하트)나 리플, 글 중의 광고 클릭도 부탁 드립니다.
1. 세계 제2차 대전의 전운
1938년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정권의 유화정책 속에 체코슬로비키아 일부 영토를 할양 받았고 비밀리에 독일 국방력을 강화하였습니다. 독일은 먼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서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독일로, 동부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베사라비아는 소련의 영향력 하에 두는 비밀 협약을 했습니다.
가짜 평화가 지속되었고 독일은 폴란드에 가짜 소요를 만들어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침공 이후 영, 프는 선전포고를 했으나 실제로는 두 나라에게는 프랑스에 대한 공격이 있기 전까지는 폴란드에 대한 군사지원이 없는 가짜 전쟁이었습니다.
독일은 소련과 라팔라조약을 맺어 소련 내에서 전차와 항공기를 시험하고 화학전을 연구했습니다. 1933년 스탈린이 권좌에 오르자 스탈린은 양국간의 군사교류를 정지시켰습니다. 또한 무능한 소련의 국방장관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독일에 파견되었던 소련군 장교들을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2. 2차 대전의 발발과 독일의 패망
1941년 독일은 바로바로사(오랑캐) 작전을 전개하여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 세 방향으로 소련을 쳐들어 갔습니다. 전세계 최강의 군대인 독일에 소련은 승산이 없어 보였습니다. 포위지역 5곳에서 포로가 200만명, 항공기 1만기, 전차 1만대가 파괴 또는 포획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저지른 몇 가지 실수는 최종적인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독일은 적군의 병력과 물자를 과소평가했습니다. 소련에 200개 사단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500개가 있었습니다. 소련은 스탈린을 내세워 잘 버텼습니다. 철로를 통해 1000개에 달하는 전략물자 생산시설을 동쪽으로 미리 옮겨 놓았습니다.
1942년 7월 11일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5개월간 독일이 소련의 유전지대를 노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졌고 33만명의 독일군이 포위되어 섬멸되었습니다. 이로써 독일군이 지닌 우월성과 무적 신화, 히틀러의 권위도 무너졌습니다.
1943년 7월 5일 다시 독일의 선공으로 쿠르스크전투가 시작되었고 독일이 기간사단 20개와 첨단기술을 동원한 전투는 겨울이 아닌 계절에 처음으로 독일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동유럽 대부분이 소련의 수중에 떨어지고 2차대전도 종전을 향해 가던 중에 1945년 2월 4일 크림반도의 얄타에서는 미, 영, 소 세 나라의 정상이 모였고 미국의 루스벨트는 소련이 대일본전에 빨리 참전해 태평양전쟁을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2차 대전에서 소련군 전사자는 760만명으로 미군 전사자의 26배, 영국 전사자의 19배나 되었고 스탈린은 비극의 덩치와 승리의 크기에 맞게 대가가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회담결과 스탈린은 UN 창립을 지지하였고, 비밀협정에서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다루어졌습니다.
소련은 과거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경험상 일본과 제2의 전선을 만들지 않고 버티면서 미국의 핵공격으로 일본군 자체가 붕괴되는 시점에서야 일본을 공격하였습니다. 세 정상은 소련이 외몽골과 일본의 쿠릴열도와 사할린, 중국의 만주철도 운영 참여권과 대련, 여순항의 영유권을 가져 가는데 합의하였습니다.
세 정상의 비밀협정은 그 당시 소련과 일본이 불가침협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비밀에 붙여졌습니다. 소련의 이러한 기회주의적 행태는 이후 반세기 동안 지속된 미소간 냉전체제가 이 때부터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결
발표자는 "선한 인간은 있어도 선한 국가는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소련을 중심으로 국가의 욕심이 드러난 전쟁입니다. 국가간 가짜 평화와 가짜 전쟁이 팽배하다가 결국 국가의 야심이 터져 버린 것입니다.
2차대전 결과 폴란드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땅을 잃고 대신에 독일의 일부 땅을 받았습니다. 이 때 독립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그리고 폴란드는 아직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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