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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개발의 역사(4) - 아폴로 11호와 달 탐사 1. 달을 향한 경쟁 1960년대 초 미국과 소련은 달 탐사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5월 25일 연설에서 “1960년대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 표면에 착륙시키는데 성공했고, 1972년까지 대략 6개월 간격으로 달에 우주인을 보냈다.   아폴로 11호에는 닐 암스트롱을 포함한 3명의 우주인이 탑승했다. 우주선에서 착륙선이 분리되어 달에 내리고 창가 쪽에 있던 닐 암스트롱이 가장 먼저 내렸다. 암스트롱은 달에 발을 내딪으면서 “이 인간의 작은 발걸음이 인류의 거대한 도약이다”고 말했다. 그는 2시간 21분간 달에서 보행을 했다. 소련도 1970년 9월 달에 탐사선을 보내 암석과 토양을 회수하는데 성공했고, 1976년까.. 2024. 12. 9.
우주 개발의 역사(3) - 2차대전 이후 우주 개발의 본격화 1. 독일의 로켓 개발 제 2차 대전 중 독일은 1934년 로켓 과학자인 폰 브라운의 주도하에 에탄올과 액체 산소를 연료로 하는 로켓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고, 32,000발의 로켓을 생산해 그 중 2,763발을 영국을 향해 발사했다.  전쟁 막바지에 독일의 발사 기지가 있던 발틱 해안의 피네뮨드 섬에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독일로부터 로켓 정보를  입수했다. 미국은 로켓 기술자를 붙잡았고, 소련은 섬을 점령했다.  2. 소련의 스푸티니크 1호 발사     20세기 초 개발되기 시작한 액체연료 로켓에 힘입어 20세기 중반에는 우주개발이 현실로 다가왔다.   소련이 독일로 부터 로켓기술을 입수한 후 23년이 지난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티니크 1호   를 쏘아 올리면서 냉.. 2024. 12. 9.
우주 개발의 역사(2) - 우주 개발의 초기 단계 1. 신라의 첨성대   1500년 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주에 있는 첨성대는 신라인들이 별을 지켜보는 곳이다. 첨성대는 27개 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라 27대 선덕왕때 지은 것이다. 중간에 창문까지 사다리를 놓아 안으로 들어가서 우물 정자의 모양을 한 천장을 통해 별을 관찰했다.    2. 고대 그리스인의 우주관   고대 그리스인들은 달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BC 6세기에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인 크세노파네스는 달이 도시와 산으로 뒤덮힌 세계라 믿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을 비롯한 수성, 금성, 화성 등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은 수성(Mercury)을 소식을 전하는 신, 금성(Venus)은 사랑의 여신, 화성(Mars)은 전쟁의 신, 목성(Jupiter)은 신 중의 .. 2024. 12. 9.
우주 개발의 역사 (1) - 왜 우주 개발인가 일론 머스크라는 스페이스 X의 경영자가 우주 개발에 적극 나섬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우주 개발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습니다. 우주 개발의 역사라는 주제로 8회에 결쳐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왜 우주 개발인가   미국의 천문학자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행성탐사 계획에 실험연구원으로 일했으며 캘리포니아에서 우주 생명체와의 교신을 시도했고 코스모스라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기도 했던 던 칼 세이건은 “인류의 생존이 경각에 달했을 때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우리의 기본적 의무이다”고 했다.    또한 미국의 공상과학 소설 작가인 래리 리븐은 “공룡이 멸종한 것은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아서 멸종한다면, 그것은 인과응보다”라고 했다...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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